등
이홍섭
1
남대천 다리 밑 포장마차에 낯익은 등 한 분이 홀로 앉아 있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관령 칼바람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포장마차는 막 홍시빛으로 물들어갔지만
아버지의 등은 미동도 없이 점점 더 잿빛으로 짙어만 갔다
2
컴컴한 극장 안에 낯익은 등 한 분이 섬처럼 앉아 있었다
열 명 남짓, 저마다 섬처럼 앉아 있는 극장 안에는
조조영화가 무료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까까머리 사춘기는 오랫동안 등을, 아니 큰 섬 하나를 바라보다가
몰래 극장을 빠져나와 경포 바다로 달려갔던가
아버지가 병가 휴직 중이었다는 사실은 먼 훗날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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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지션』 2022-봄(37)호 <POSITION 4/ 신작시> 에서
* 이홍섭/ 1990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강릉, 프라하, 함흥』『숨결』『가도 가도 서쪽인 당신』『터미널』『검은 돌을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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