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족失足의 세월
신승민
빌딩 숲 위로 하늘이 가라앉는다 비구름의 침몰이다 하늘의 살은 찢어져 산과 바다를 먹이고도 남음이라 서있는 사람마다 타관他官에서 죽을 먹나니 공허를 씹는 물에 비치는 건 신도 인간도 아닌 영락零落한 나무들 뿐이로다
눈멀었다 하니 청춘 눈감았다 하니 천리千里 어느새 세월의 퇴적은 회한悔恨의 삼각주를 낳았구나 설익은 계절에 부르튼 잡초에도 물은 흔들리나니 길은 잔도棧道요 바람은 육필肉筆이라 끊어진 생의 마디마다 써내려간다
황혼에 녹아내리는 고드름이여 묘원墓園의 고독을 깨우는 세찬 비여 쥐가 까마귀를 물고 풀들이 뱀을 짓누르니 취하지 않아도 모든 주장이 즐겁다 천마天馬가 운구하는 녹슨 관에서 가쁜 생의 불빛들은 옹기종기 속닥거린다
-전문-
▶ 시간의 음영 고독과 그리움의 전언(발췌)_김석준/ 시인, 문학평론가
"세월"에 "재갈"을 물려 더디게 만들어 향락의 절대적인 주체가 되기를 염원하지만, 생은 늘 그와 정반대로 인간학 전체가 시간의 재갈에 물려 "버둥"대는 몰골을 하곤, 이내 스스로가 시간의 타자였음을 자인하게 된다. 특히 신승민 시인의 신작시들은 시간의 여율呂律에 내재한 존재론적 음영을 내밀하게 투시하면서, 인간학의 참상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시간의 진리 앞에 인간은 그저 스치는 과객에 지나지 않다. 오늘도 향락의 절대적 주체가 되기 위해 커다란 "웃음소리"를 온 천하에 공명시키지만, 그 역시 "덧없이 버둥거리"는 애잔한 몸짓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오늘이 가고나면 시인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그 역시 미궁이다. 내일은 내일의 일에 맡겨두고 오늘의 덧없음을 메워갈 뿐, 더는 욕망의 주체로 남을 수 없다. 시간의 음영 저쪽으로 사라진다. 애잔한 그리움만 남는다. (p. 시 116/ 론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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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2-봄(85)호 <신작소시집/ 작품론>에서
* 신승민/ 2015년『미네르바』로 시 부문 & 2016년『문예바다』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한국문예작가연구』등
* 김석준/ 1999년『시와시학』으로 시 부문 & 2000년『시안』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기침소리』, 평론집『비평의 예술적 지평』『현대성과 시』『감히 시인에게 말을 걸다』『무덤 속의 시말』『의미의 곡면』『공감, 실재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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