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경철_하나의 도(道)에 이르는...(발췌)/ 지구 뒤꼍의 거인 : 최동호

검지 정숙자 2022. 4. 27. 02:00

 

    지구 뒤꼍의 거인

 

    최동호

 

 

  어린 시절 우주에 거인이 살고 있다고 상상했다.

  

  지구를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거나

  태양을 한 점 불쏘시개로 여기는 거인이

 

  지구 뒤꼍 우리 집

  장독 감나무 옆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줌 흙이나

  바람에 날려 보이지 않는 먼지 속에는 지금도

 

  우주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 거인이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와 함께 장독대 옆 감나무 잎을 반짝이게 하고

 

  메주 덩어리 곰팡이를 발효시키는 바람의 씨앗을 키우며 살고 있을 것이다.

      -전문, 시집 『얼음 얼굴』

 

  ▶ 하나의 도에 이르는 불이不二의 삶과 시와 시학(발췌)_이경철/ 문학평론가

  2011년에 펴낸 6번째 신작 시집 『얼음 얼굴』에 실린 시 「지구 뒤꼍의 거인」 전문이다. 상상력의 원천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시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상상했던 우주의 거인이 지금도 살고 있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지구로 공깃돌 놀이하고 태양을 불쏘시개로 삼는 그 거대한 거인은 우주의 지구 뒤꼍 우리 집 감나무 옆 먼지 속에 살고 있다.

  그 거인은 지금은 죽은 외할머니와 함께 바람의 씨앗을 키우고 있다. 감나무 잎을 반짝이게 하고 메주 곰팡이를 발효시키는 바람은 우주를 움직이는 힘이다. 어릴 적 상상, 거대한 추상이 점점 좁혀지며 지금 현재로 구체화되는 이 우화 같은 시 얼마나 힘 있는가. 그러면서도 치밀하게 계산돼 압축된 서사를 뜯어 읽다 보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활물론적 상상력, 우주적 소통을 내장하고 있는가.

  우주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진 거인은 바람이며 외할머니며 한 줌 흙이며 먼지이며 그것을 온몸으로 감지하는 시인 아니겠는가. 우주만물이 서로 몸 바꾸며 전화轉化하고 한 몸으로 어우러지는 이치까지 가뿐히 드러낸 이 시의 정신은 또 얼마나 깊은가. 이렇게 시인의 고향 수원은 정신주의 극서정을 낳고 있는 시인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p. 시 37/ 론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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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학』 2022-봄(93)호 <기획특집_수원의 문화 예술인, 최동호 시인의 문학과 삶>에서  

  * 이경철/ 1990년『현대문학』『한국문학』으로 평론 부문 & 2010년『시와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저서『21세기 시조 창작과 비평의 현장』『미당 서정주  평전』『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겹친 이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