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뒤꼍의 거인
최동호
어린 시절 우주에 거인이 살고 있다고 상상했다.
지구를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거나
태양을 한 점 불쏘시개로 여기는 거인이
지구 뒤꼍 우리 집
장독 감나무 옆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줌 흙이나
바람에 날려 보이지 않는 먼지 속에는 지금도
우주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 거인이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와 함께 장독대 옆 감나무 잎을 반짝이게 하고
메주 덩어리 곰팡이를 발효시키는 바람의 씨앗을 키우며 살고 있을 것이다.
-전문, 시집 『얼음 얼굴』
▶ 하나의 도道에 이르는 불이不二의 삶과 시와 시학(발췌)_이경철/ 문학평론가
2011년에 펴낸 6번째 신작 시집 『얼음 얼굴』에 실린 시 「지구 뒤꼍의 거인」 전문이다. 상상력의 원천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시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상상했던 우주의 거인이 지금도 살고 있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지구로 공깃돌 놀이하고 태양을 불쏘시개로 삼는 그 거대한 거인은 우주의 지구 뒤꼍 우리 집 감나무 옆 먼지 속에 살고 있다.
그 거인은 지금은 죽은 외할머니와 함께 바람의 씨앗을 키우고 있다. 감나무 잎을 반짝이게 하고 메주 곰팡이를 발효시키는 바람은 우주를 움직이는 힘이다. 어릴 적 상상, 거대한 추상이 점점 좁혀지며 지금 현재로 구체화되는 이 우화 같은 시 얼마나 힘 있는가. 그러면서도 치밀하게 계산돼 압축된 서사를 뜯어 읽다 보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활물론적 상상력, 우주적 소통을 내장하고 있는가.
우주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진 거인은 바람이며 외할머니며 한 줌 흙이며 먼지이며 그것을 온몸으로 감지하는 시인 아니겠는가. 우주만물이 서로 몸 바꾸며 전화轉化하고 한 몸으로 어우러지는 이치까지 가뿐히 드러낸 이 시의 정신은 또 얼마나 깊은가. 이렇게 시인의 고향 수원은 정신주의 극서정을 낳고 있는 시인의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p. 시 37/ 론 37)
----------------
* 『서정시학』 2022-봄(93)호 <기획특집_수원의 문화 예술인, 최동호 시인의 문학과 삶>에서
* 이경철/ 1990년『현대문학』『한국문학』으로 평론 부문 & 2010년『시와시학』으로 시 부문 등단, 저서『21세기 시조 창작과 비평의 현장』『미당 서정주 평전』『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겹친 이 순간』등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종훈_황금빛 신기루와 서정의 수호자(발췌)/ 서정시의 시간 : 최동호 (0) | 2022.04.27 |
|---|---|
| 봄을 버리다/ 이채민 (0) | 2022.04.27 |
| 언덕 이미지/ 송승언 (0) | 2022.04.26 |
| 유성호_극서정시의 미학적 비전과...(발췌)/ 돈암동 시장 풍경 : 최동호 (0) | 2022.04.26 |
| 윤재웅_불심 즉 시심(발췌)/ 땀방울 1 : 최동호 (0) | 2022.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