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유성호_극서정시의 미학적 비전과...(발췌)/ 돈암동 시장 풍경 : 최동호

검지 정숙자 2022. 4. 26. 02:34

 

    돈암동 시장 풍경

 

    최동호

 

 

  차일을 두른 시장 어귀 모퉁이에

  매일 아침 파를 다듬는

  할머니가 있었다 일 년 내내

  고개를 들지도 않고

  파를 다듬는 할머니는 도통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파를 다듬기 위해 사는

  것처럼 매일 아침

  채소 가게 어귀에서

  머리가 하얗게 파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한 번도 고개를 들어 행인을 보지 않고

  언제나 구부린 자세로

  파를 다듬던 할머니가

  꽃샘바람 부는 어느 날

  바람이 지나가는

  시장 어귀를 맑은 얼굴을 들어

  바라보고 있었다

  다듬던 파처럼 깨끗한 얼굴에

  고운 티가 가시지 않은

  채소가게 할머니 작은 얼굴에서

  나는 흘낏 돌처럼 강인한

  한국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전문-

 

  극서정시의 미학적 비전과 성취_최동호 시의 개진 양상(발췌)_유성호/ 문학평론가

  이 시편은 일상에 대한 관찰이 얼마나 최동호의 시에서 중요한 축을 구성하는지를 살갑게 보여준다. 시장 어귀에서 파를 다듬어 파는 할머니에게서 시인은 "도통/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파를 다듬기 위해 사는" 모습을 발견한다. 할머니가 하얗게 껍질을 벗기는 장면은 오롯이 할머니의 백발을 환기하고,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된다는 세월을 한껏 은유한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일에 무심하던 할머니가 꽃샘바람 부는 어느 날 "바람이 지나가는/ 시장 어귀를 맑은 얼굴을 들어/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시인은 그녀가 다듬던 파처럼 그녀의 깨끗하고 고운 얼굴에서 "돌처럼 강인한/ 한국 어머니의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그야말로 포괄적 의미의 리얼리즘이 최동호의 시 깊숙한 곳에 들어선 것이다. (p. 시 19-20/ 론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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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학』 2022-봄(93)호 <기획특집_수원의 문화 예술인, 최동호 시인의 문학과 삶>에서  

  * 유성호/ 1999년 ⟪서울신문⟫으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서정의 건축술』『근대의 심층과 한국 시의 미학』『문학으로 읽는 조용필』등.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