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 시장 풍경
최동호
차일을 두른 시장 어귀 모퉁이에
매일 아침 파를 다듬는
할머니가 있었다 일 년 내내
고개를 들지도 않고
파를 다듬는 할머니는 도통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파를 다듬기 위해 사는
것처럼 매일 아침
채소 가게 어귀에서
머리가 하얗게 파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한 번도 고개를 들어 행인을 보지 않고
언제나 구부린 자세로
파를 다듬던 할머니가
꽃샘바람 부는 어느 날
바람이 지나가는
시장 어귀를 맑은 얼굴을 들어
바라보고 있었다
다듬던 파처럼 깨끗한 얼굴에
고운 티가 가시지 않은
채소가게 할머니 작은 얼굴에서
나는 흘낏 돌처럼 강인한
한국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전문-
▶ 극서정시의 미학적 비전과 성취_최동호 시의 개진 양상(발췌)_유성호/ 문학평론가
이 시편은 일상에 대한 관찰이 얼마나 최동호의 시에서 중요한 축을 구성하는지를 살갑게 보여준다. 시장 어귀에서 파를 다듬어 파는 할머니에게서 시인은 "도통/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파를 다듬기 위해 사는" 모습을 발견한다. 할머니가 하얗게 껍질을 벗기는 장면은 오롯이 할머니의 백발을 환기하고,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된다는 세월을 한껏 은유한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일에 무심하던 할머니가 꽃샘바람 부는 어느 날 "바람이 지나가는/ 시장 어귀를 맑은 얼굴을 들어/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시인은 그녀가 다듬던 파처럼 그녀의 깨끗하고 고운 얼굴에서 "돌처럼 강인한/ 한국 어머니의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그야말로 포괄적 의미의 리얼리즘이 최동호의 시 깊숙한 곳에 들어선 것이다. (p. 시 19-20/ 론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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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시학』 2022-봄(93)호 <기획특집_수원의 문화 예술인, 최동호 시인의 문학과 삶>에서
* 유성호/ 1999년 ⟪서울신문⟫으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서정의 건축술』『근대의 심층과 한국 시의 미학』『문학으로 읽는 조용필』등.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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