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미연_절대 순수의 서정과 자연,...(발췌)/ 비밀의 숲 : 김후란

검지 정숙자 2022. 4. 21. 17:33

 

    비밀의 숲    자연 속으로 · 1

 

    김후란

 

 

  나는 파도의 옷자락을 끌고

  이 숲으로 왔다

  변화를 기다리는 생명들이 있었다

  바위조차 숨죽이고 기다렸다

 

  푸른 잎새들 이마에

  천국의 새들이 모여들고

  들꽃을 피우려고 비를 기다리던 산자락에

  바다가 입을 맞춘다

 

  겹겹 옷 입은 산 황홀하여라

  비밀의 숲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어린 나무들과

  키 큰 나무들의 숨소리에

  저 소리꾼의 진양조 가락이 울린다

 

  눈부셔라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면서

  아침 햇살에 비늘 번득이는 바다처럼

  산은 살아 있다 청렬하고 푸근하다

 

  신이 만든 숲이다 나를 끌어안는다

  나는 연혼의 긴 그림자를 끌고

  천천히 걸어간다

     -전문-

 

  절대 순수의 서정과 자연, 그리고 메타시_김후란 시인의 시세계(발췌) _김미연/ 시인, 문학평론가

  김후란(본명: 김형덕) 시인은 1934년 서울에서 나고 부산에서 사범학교를 나왔다. 대학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이수했고 1960년 월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은 『장도와 장미』 등 13권을 출간하고 시선집 『존재의 빛』 등 3권, 시전집 『김후란 시전집』이 있다. 상으로는 현대문학상, 월탄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현재 예술원 회원, '문학의 집 · 서울' 이사장으로 있다.

  김후란 시인의 시편들은 순수서정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는 정통서정의 대동맥에 닿아 있다. 그 맥은 김소월, 김영랑, 서정주, 신석정, 박목월, 조지훈, 신석초 등으로 연결되는데 풋풋한 초기의 서정에서부터 자연, 가족, 존재 등으로 외연이 확장되어 가지만 그 맥에서 늘 한 모습 한 목소리를 보여주며 자신만의 화법과 독특한 색을 갖추었다.

  시인에게서 특별히 눈여겨볼 대목은 2020년에 낸 『그 별 우리 가슴에 빛나고』 연작시집이다. 김 시인은 30인의 특징을 드러내는 시를 쓰고 <헌시>라 했다. 김광균, 김광섭, 김소월, 김영랑, 김현승, 모윤숙, 백석, 서정주, 신석초, 유치환, 윤동주, 이상, 정지용, 한용운 등 30인인데 시의 성격으로 보아 실명시實名詩, 메타시(meta-poetry), 평전시評傳詩 등의 장르라는 명칭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실명시는 실명소설에 상대되는 명칭인데 실명소설의 경우 이동주 시인이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한 이광수, 김동인, 김동리 등에 대한 문인 실명소설을 두고 나온 장르명이다. 실명시는 그에 상응하는 명칭임을 알 수 있다. 평전시는 시가 평전, 전기적 내용을 포괄하는 것에서 온 장르명이다. 메타시는 '시에 대한 시의 개념'이다. 메타비평이 '비평에 대한 비평'이듯이 말이다.

  김후란 시인의 '헌시'는 전기적 요소도 있고 시구절에 의한 패러디적 요소도 있다. 시적 전개를 해당 시인의 명시 구절을 포인트로 한다는 점에서 '메타시'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어쨌거나 김 시인의 메타시 30편은 이 시편들만으로도 김 시인의 업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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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이를 알 수 없는 안개와 나무, 푸른 잎새, 천국의 새들이 있는 데가 「비밀의 숲」이라는 것이다. 끝연에서 "신이 만든 숲이다 나를 끌어안는다/ 나는 영혼의 긴 그림자를 끌고/ 천천히 걸어간다"고 설명한다. 숲은 신이 만든 피조물이고 화자는 거기에서 신의 음성을 들으며 응답하고 있는 시이다. 시인은 자연의 숲이 무한한 신비로 가득 차 있고 거기다 신이 인간을 끌어가고 있으니 이는 비밀이고 은혜이다. (p. 시 104-105/ 론 96-97 //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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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1-겨울(84)호 <현대시인열전 13/ 김후란 편>에서

  * 김미연/ 2015년『월간문학』으로 문학평론 & 2018년『월간문학』으로 시조 부문 등단, 시집『절반의 목요일』, 평론집『문효치 시의 이미지와 서정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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