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겸_사물의 기척을 듣다(발췌)/ 평화 : 손음

검지 정숙자 2022. 4. 19. 00:46

 

    평화

 

    손음

 

 

  강을 믿고 식당을 차린다 강을 믿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우리가 얼마 만이냐며 고기를 뜯는다 박수 소리가 우거진다 강을 믿고 나무가 자라고 오리 몇 마리가 자랄 것이다

 

  강을 믿고 쪽파와 부추가 자란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자란다 물고기가 헤엄친다 무엇이든 헤엄친다 갈대는 서서 걸어간다 평화는 저렇게 조용한 이름들이 만드는 것

 

  강물은 흐른다 세월은 누가 만든 것이냐며 노인들 트롯을 듣는다 장윤정이 최고야! 구둣발로 딱딱, 박자르 잡는다 과일집 여자는 트럭을 세워둔 남자를 다그친다 오토바이 소리가 여자의 악다구니를 빼앗아간다 평화는 저렇게 시끄러운 구두와 악다구니와 오토바이가 만드는 것

 

  낚시꾼들이 보트를 타고 갔다 그들은 이상하게 발견되었다 그들은 오로지 빨갛게 매눙탕을 끓여 먹을 작정이었다 경찰이 다녀갔지만 식당도 쪽파도 과일 집도 떠돌이 개도 트럭도 그들을 모른다 했다 평화는 떠돌이 개와 매운탕과 여자와 식당과 그들이 만드는 것

 

  2021. 5월 21일 금요일. 나의 하루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전문- 

 

 

   사물의 기척을 듣다_손음 시인의 신작시에 대하여(발췌) _김겸/ 시인, 문학평론가

  시에 따르면 '식당'은 '강'을 믿고 차린 것이며 '사람들'이 몰려든다. '강'을 믿고 '나무'가 '오리 몇 마리'가, '쪽파와 부추'가 자라며, 물고기든 무엇이든 헤엄치며 갈대는 서서 걸어간다. 이렇게 강에 자신을 맡긴 존재들은 그 품을 떠나서는 살 수 없으며 그 기댐의 행위는 존재론적 믿음에서 나온다.

  강 주변에는 트롯을 듣는 노인이 있고 남자를 다그치는 과일집 여자가 있다. 노인의 구둣발 장단은, 여자의 악다구니는, 그보다 더 큰 오토바이 소리가 빼앗는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은 서로 간의 소음이 넘나들며 수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또 사라지는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 변화한다. 이 요란한 일상이 소음들과 그 상쇄相殺의 과정이 곧 평화를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매운탕을 끓여 먹기 위해 보트를 타고 나선 낚시꾼들은 돌아오지 못한 채 "이상하게 발견"된다. 경찰도, 식당도, 쪽파도, 과일 집도, 떠돌이 개도, 트럭도 그들을 모른다고 한다. 이처럼 생에는 함정이 있고, 끝내 알 수 없는 미궁이 있다. 이 미궁이라는 불가지의 영역 또한 우리 생의 평화를 역설적으로 보장한다. 그리하여 화자는 마침내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나의 하루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고. 그건 믿음이, 일상의 소음들이, 오리무중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한데, 그 외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평화란 무엇일까. 그 전전긍긍 속에 생이 있고, 문학을 비롯한 예술이 있고,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p. 시 151/ 론 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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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1-가을(83)호 <신작 소시집/ 신작시/ 작품론>에서

  * 손음/ 199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누가 밤의 머릿결을 빗질하고 있나』『칸나의 저녁』, 연구서『전봉건 시의 미의식 연구』

  * 김겸/ 2002년 『현대문학』으로 평론 부문 등단 & 202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장편소설『여행의 기술    Hommage to route7』, 평론집『비평의 오쿨루스』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