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영통 느티나무의 영혼/ 최동호

검지 정숙자 2022. 4. 18. 02:07

 

    영통 느티나무의 영혼

 

    최동호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나무가 대지에 뿌리박고 수호신처럼 당당하게 서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거기 그렇게 느티나무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봄맞이 청명제사 때 막걸리를 바치고 치성 드리면 무성한 푸른 잎을 늘어뜨려 그들을 지켜 주리라 믿었다.

 

  어느 날 한 가닥 봄 태풍이 영통 마을을 지나가다가 고층아파트에 막혀 회오리바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어린아이 다루듯 잔가지를 가볍게 흔들어 보이던 느티나무가 점차 바람에 취해 우람한 줄기들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파트보다 높이 팔을 치켜 올리니 세상이 들썩거리고 바람의 길목을 막아선 아파트들도 몸을 흔들었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돌던 신령한 기운이 아파트 사이를 빠져나가고 갑자기 느티나무는 자신의 팔뚝 하나를 지상에 내던졌다. 그 순간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면서 느티나무의 팔다리가 우두둑 잘려나갔다. 거대한 몸통은 수박처럼 두 쪽으로 갈라지고 오백 년 묵은 붉은 우유 빛 속살을 드러냈다.

 

  당산나무의 죽음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밀집한 고층아파트들이 만든 재난이었다. 춤을 추던 느티나무가 부러져나가는 모습을 숨어서 바라보던 동네 사람들이 뒤늦게 모여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해 보았지만 그것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장엄한 의식이었다.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던 나무의 영혼이 뿌리 뽑힌 역사적 사건이었다.

    -전문-

 

  * 2018년 5월 태풍에 500년 넘게 영통 언덕을 지키고 살던 느티나무가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영통구청장이던 박래헌 씨의 증언을 토대로 현장답사 후 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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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네르바』 2021-가을(83)호 <poetic focus>에서

  * 최동호/ 1976년 「황사바람」으로 시 부문 & 1979년 《중앙일보》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공놀이 하는 달마』『불꽃 비단벌레』『얼음 얼굴』『수원 남문 언덕』『제왕나비』등, 시론집『현대시의 정신사』『불확정시대의 문학』『평정의 시학을 위하여』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