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에 대한 반문
안정옥
그러니까 내 뜻 없이 이 사람과 저 사람이
합해 내가 되었으니 나는 혼합물인 셈이지
나는 나인 줄 알았는데 나인 것은 하나도 없었어
그러니까 이 혼합물과 저 혼합물에 부대낀다는 것
그건 비애였지
이곳에서 멀리 도망친 날들을 손꼽아봐,
그곳에서 엄청나게 푸근한 다름이 펼쳐질 줄 알았지
그러니까 터벅터벅, 다시 혼합물의 세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그건 비정함이지
그토록 애쓰며 살아야 겨우 산다하는 이곳,
그러니까 한풀 꺾여 그렇게 한풀, 한풀,
풀이 거의 죽은 뒤에야 끔찍한 나로 돌아오지
사람들은 그후에야 사람답다고 말해주지
나는 내 자신을 말해야 될 때
그러니까를 앞세워, 모든 일은 중간쯤에 막히는지 몰라
생각할 시간을 좀 더 많이 벌기 위해
반듯이 그러니까를 쓰고 있어
무언가를 알아듣게 부연해줘야 하는 게 지겨워
여전히 도망치고만 싶은 여기 혼합물의,
그러니까 아직도 나는 그러니까에 근접해 있어
그래서 지금도 중간쯤에 멈춰,
생각할 시간을 좀 더 벌기 위해
그러니까를 아직도 내 앞에 세우고 있긴 해
-전문-
해설> 한 문장: 고유한 '나'라는 것은 처음부터 없고, 나라는 존재자는 타자들의 혼합에 의해서 구성되었다는 것은 포스트 구조주의 시대에 하나의 명중한 명제와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러한 현실을 수용하는 것을 거부하는데, "그건 비정함이지"라든가 "풀이 거의 죽은 뒤에야 끔찍한 나로 돌아오지"와 같은 표현들이 그러한 세계가 얼마나 속악하고 냉혹한 것인지를 대변해준다. 이러한 세계에서 시인이 살아가는 방식, 그러니까 처세술과 같은 것이 "그러니까"이다. '그러니까'라는 말은 "내 자신을 말해야 될 때", 즉 자신을 주장하고 자신을 내세워야 할 때 사용하는 것인데, "나인 것은 하나도 없"는 세계에서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딜레마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고 할 수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세계에서 나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아듣게 부연해줘야 하는" 상황에서 시인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이 '그러니까'라는 말인 셈인데, 그 말은 어떤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중간쯤에 멈춰" 서 있는 어정쩡한 상태,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포즈와 곤경을 함의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라는 말도 또한 어떻게 보면 환합물의 세계라고 할 수 있으며, 자아와 타자 사이에서 그들을 연결해 주면서도 또한 어떤 소통도 차단하는 애매한 매개물인 셈이다. 이러한 구도는 시인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설명해주는데, 고유한 개체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 사이를 연결하는 어떤 매체도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혼합물"이라는 시어에 집약되어 있다. 섞이고 결합된 혼합물이 존재자들의 본질인 셈인데, 그것 또한 불완전하다는 것이 시인의 진단이다. (p. 시 14-18/ 론 107-108) (황치복/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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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다시 돌아 나올 때의 참담함』에서/ 2022. 4. 5. <애지> 펴냄
* 안정옥/ 1949년 서울 출생, 1990년『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웃는 산』『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나는 독을 가졌네』『나는 걸어다니는 그림자인가』『아마도』『헤로인』『내 이름을 그대가 읽을 날』『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연애의 위대함에 대하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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