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귀가 접힌 고양이처럼 외 1편/ 이근화

검지 정숙자 2022. 4. 15. 02:11

 

    귀가 접힌 고양이처럼 외 1편

 

    이근화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 썩 괜찮은 신용이었는데 흘리고 말았다. 어느 바닥일까. 밤하늘은 뿌옇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뒤져본 곳을 다시 뒤져봐도 나의 신용은 없었다. 어린 고양이가 배를 곯을 때 내던 소리. 짜증이 밀려왔다.

 

  딸아이가 종이를 접고 자르고 그림을 그려 내밀었다. 잃어버린 카드 대신이었다. 고래가 파도 위에서 춤추고 있었다. 멀리 갈매기도 날고. 마음은 끼루룩. 귀가 접힌 고양이처럼 어쩐지 민망하고 할 말이 없었다. 푸른 카드를 지갑에 넣었다. 가난한 부자로 살기로. 부유한 가난뱅이인가. 어쨌든 카드를 잃고 신용을 잊고.

 

  침대 밑에서 나의 낡은 신용은 발견되었다. 이상한 안도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다시 신용을 지키고 그럭저럭 살아 보기로? 고래는 어떡하나. 다정한 파도는. 갈매기가 두어 마리 울고. 구름은 뭉실뭉실. 분실 카드가 고래 카드를 낳은 날. 돌아온 카드가 고양이 울음을 우는 날. 귀를 접고 돈을 벌고 쓰고 또 살아갈 궁리를 해보는 나의 방에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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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까지 희미하게*

 

 

  우리의 두 손에 총 대신 당근이 들려 있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세상에는 생각 없는 엄마와 무능한 아빠와 아픈 동생들이 있지요

  송이야, 이 세상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가족밖에 없어요

  귓바퀴를 돌아 튕겨져 나온 말들이 보도블록으로 똑똑 떨어집니다

  밟고 걷습니다, 붉은 발자국들이 길게 이어져서

  나무둥치를 끌어안고 새벽까지 희미하게 송이야 명희야 세희야

  보고 싶습니다, 생일날 명동에서 만나요

  지갑 세 개 네 개 훔쳐줄게요

  최악의 팀으로서 고난과 곤경과 곤혹을 창조해내고

  우리의 우리의 우리의 과장님

  개똥밭에 굴러도 굴러서 선생님

  걸레질을 합니다 지우고 밀어내고 나도 새싹같이 또 자라는 것들

  수염 난 거대한 새끼들 우르르 귀엽습니다

  새벽까지 희미하게 빛나는 것들 점점 무거워지는 것들

  전봇대 담벼락의 흐릿한 자국들은 다 주인이 있어요

  옛날 대문의 푸른빛들을 끌어당기지요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절대 울지 않습니다

     -전문-

 

    * 정미경 소설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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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에서/ 2021. 9. 3. <창비> 펴냄   

 이근화/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칸트의 동물원』『차가운 잠』『우리들의 진화』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