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 서서
이근화
도서관을 세웠습니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책을 날마다 주워 와서
번호를 매기고
뜯긴 책장을 붙였습니다
나란히 꽂았습니다
캄캄하고 냄새가 나서
나는 이곳이 좋아요
조금 더럽고 안락해서
날마다 다른 꿈을 꿉니다
도서관이에요
책들은 하룻밤이 지나면
숨을 쉬고
이틀 밤이 지나면
입술이 생기고
사흘째 팔다리가 태어납니다
나흘째 사랑을 나누고
먼지가 가라앉습니다
나는 뻘뻘 땀을 흘리며
혼자 길고 긴 산책을 합니다
멀리서 책을 한 권 또 주워 왔습니다
이번에는 코가 없고
감기에 걸린 놈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함께 커피를 마시고
토론을 했습니다
불을 다 끈 도서관에서
우리는 우리는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 서서
구멍 난 내일을
헌신짝 같은 어제를
조용히 끌어안았습니다
도서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였기 때문입니다
-전문-
* 리처드 브라우티건 『임신중절』, "출판사들이 원하지 않는 서정적이고, 신들린 것 같은 미국의 저술을 모으는 일 말이야."
해설> 한 문장: 도서관은 책이라는 생명이 태어나는 곳이다. 자궁에서 태아의 수정과 발달이 이루어지듯이 도서관에서 책은 숨을 쉬고, 입술이 생기고, 팔다리가 돋는다. 이 과정에서 독서는 사랑을 나누는 행위와 유사하다. "책을 더듬고, 만지고, 펼치고, 덮는 행위로서 독서는 사랑을 나누는"(이근화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마음산책 2020, 224~25면) 몸의 시간과 닮아 있다. 생명을 지닌 존재로서 책의 탄생과 사랑이 보여주듯이, 책은 우리가 이전과는 다른 생의 감각을 지닌 주체로 태어나는 계기가 되고, 사랑을 계속할 힘을 부여해주는 한편 사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세상의 중심에 서서" 도서관을 세우는 것이다. 잿빛의 세계, 폐허와 같은 현실에서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힘이 도서관에 깃들어 있다. 도서관은 읽고 쓰는 공간이자 사랑의 공간이며, 생명이 탄생하는 시간과 미래를 구성하는 시간을 예비하고 있다. 시집 곳곳에 내재한 허무주의와 견딤, 슬픔론과 명랑이라는 아이러니에서 견딤과 명랑의 모멘트가 되는 것이 바로 읽고 쓰는 생의 도서관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책"을 주워 와서 뜯어진 책장을 붙이는 것, 출판되지 못한(할) 책들을 읽고 쓰는 것, 그렇게 모든 이들이 작가가 되고, 마음의 도서관을 짓는 일은 궁극적으로 자기 해방과 함께 있음의 감각과 연결된다. (p. 시 27-29/ 론 108-109) (김영희金怜熙/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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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에서/ 2021. 9. 3. <창비> 펴냄
* 이근화/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칸트의 동물원』『우리들의 진화』『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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