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병정 인형/ 양수덕

검지 정숙자 2022. 4. 14. 16:17

 

    병정 인형

 

    양수덕

 

 

  바람이 입간판을 떠다 밉니다

  왕궁을 지키는 근위병처럼 나는 섰습니다

  심심한 영혼이 즐기는 놀이가 아닙니다

 

  돌이키는 일이 마지막을 겨누는 일이어서 가슴이 컴컴해진 과일처럼 눕습니다

  썩었다는 말, 그대로

 

  벌써 2년째 손님 끊긴 음식점이

  코로나 바이러스들이 환상 파티를 한다는 수상한 집이 돼버렸습니다

  한 고개 넘자 또 붉게 웃음 돋는 고개

  버틴 뒤끝, 말라 비틀린 가지의 호흡으로 나는 마주합니다

 

  태어날 때 움켜쥐었던 주먹을 폅니다

  꼬깃꼬깃 접혀 있던 그 무엇은 나의 빈 껍데기였군요

  생의 목록을 내려놓으니 짐들이 차례차례 가벼워집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 해 요리도 서빙도 접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넋두리가 울컥거립니다

  그러나 나는 긍정적인 인형, 음식점의 마지막을 지키는 병정입니다

 

  거덜 난 자리에서 몹쓸 바람 앞에서

  쓸쓸하지 않은 기억을 불러옵니다 다리에 쥐가 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병정이 멀리 가야할 곳은 너무나 어두워서 지팡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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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시학』 2022-봄(40)호 <미래시학 시단 > 에서

   * 양수덕/ 200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신발 신은 물고기』『가벼운 집』『엄마』등, 산문집『나는 빈둥거리고 싶다』, 소설집『그림쟁이 ㅂㅎ』, 동화『동물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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