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설득/ 문이레

검지 정숙자 2022. 4. 14. 01:56

 

    설득

 

    문이레

 

 

  너를 보고 매일 앓았다

 

  가끔은 나로도 부족해 밖으로 뛰쳐나가면

  백색증을 앓는 소녀처럼 하얗게 핀 마음이 무서워

 

  약봉지가 뒹구는 방은 봄비에도 눅눅해져 온몸의 혈관들을

  일으켰다 비문을 받아 적듯, 빛을 피해 숨어든 집그리마를

  책으로 덮어놓고 저것도 악충일까 고민했다 산 입이 무섭지,

  어둔 생각은 과정을 앞서 문을 노크했다

 

  감춰지지 않는 검푸른 혈관처럼

  마주한 주검보다 더 리얼한 생각들

 

  이 방 저 방 벽처럼 깔린 비유의 그림자

 

  백색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듯

  붉으락푸르락

  넌 어디로 가니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으며

  무표정이라도 남아있기를

  모두가 혼자라고 쓴 건

  아마, 그랬는지 몰라

  혼자를 죽음으로 인식하던 날

  내 시야를 관통하고 사라진 은유들 때문이라고

 

  멀어지는 연인에게선

  발생하기도 전 모든 슬픔이 저장되어

 

  난 나를 접기로 했다

  방심하듯 그렇게 설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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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시학』 2022-봄(40)호 <미래시학 시단> 에서

   * 문이레/ 2019년 『시산맥』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