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243

삼다훈과 시 쓰기 교육/ 김종상

삼다훈과 시 쓰기 교육 김종상/ 시인 · 한국문인협회 고문 나는 1955년에 교사가 되었는데, 학교가 도 지정 국어과연구학교였다. 6 · 25를 겪은 뒤라 미국이 보내주는 옥분과 전지분유로 아이들 주린 배를 채워야 했으니 교육환경이나 학력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학교장은 연구공개 때 교육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 주려고 했다. 아이들 두뇌를 열어 보일 수는 없으니, 글짓기 실적을 보이는 데 착안을 했다. 학교장은 나에게 글짓기 행사에서 입상자를 많이 내라고 했다. 글짓기는 국어 교육의 꽃이니 가장 좋은 가시적인 실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나는 수업 지정반에다가 문예부까지 맡았고, 글짓기상을 받아오면 상장을 액자에 넣어 교장실 복도 벽에 내걸었다. 문제는 고학년에도 문맹자가 있는 형편에 아이들 실력..

권두언 2023.07.31

징후를 찾아서(권두언)/ 황정산

징후를 찾아서 황정산/ 본지 주간 현대 사회는 "왜?"라는 질문이 사라진 사회이다. 그러한 질문을 하지 않고도 우리가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나 말고 누군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미 만들어 놓고 있다. 우리는 "왜?"라는 질문 없이 태어나고 공부하고 또 사회에 입문한다. 왜 사는지 모를 물건을 사고, 왜 만나야 하는지 모를 사람을 만나고,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 채 돈을 벌고 재산을 모은다. 나의 욕망은 누군가의 욕망의 대리물이거나 모사일 뿐이다. 이 가짜 욕망이 상품을 만들고 상품을 소비하고 스스로 상품이 되게 만든다. "왜?"라는 질문은 주체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나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성찰하는 것은 바로 이 질문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체가 사라진 시대에 ..

권두언 2023.07.14

살 만한 세상/ 이준관

살 만한 세상 이준관 길 한복판에 새가 떨어져 있다 날개를 다쳤는지 날지 못하고 부리를 다쳤는지 피가 맺혔다 아이들이 걱정스레 들여다보며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자며 119에 신고하자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차가 가까이 오자 아이들이 두 팔을 벌려 "아저씨, 여기 새가 떨어져 있어요" 차를 막아선다 아, 저런 아이들이 있는 한 새들도 사람도 살 만한 세상이다 -전문- --------------------------- * 『문학의 집 · 서울』 2023. 5월(259)호, 에서 * 이준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시 부문 & 1974년 『심상』으로 시 부문 등단

권두언 2023.07.09

따라 하는 시, 비슷비슷한 말 잔치!(부분)/ 조창용

中 따라 하는 시, 비슷비슷한 말 잔치!(부분) 조창용 (前略) 시가 갖는 미덕은 사람의 감성을 끌어내어 서정적 교감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대시의 지나친 '미화주의'가 개인을 우선시하는 것이 미덕이랄까? 그래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흉내내는 시들이 많아 읽는 맛을 반감시키는 듯하다. 자칫 좋은 시, 평단의 주목을 끌려면 무조건 '낯설게 하기'의 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지나친 관념의 결과이다. '낯설게 하기'는 새로운, 익숙하지 않은 표현을 요구한다. 현대시작법의 한 방법이자 현재 우리 시단을 아우르는 작법이다. 이러한 시작법은 대표적으로 오규원 시인의 에서 그 개념화를 선보이면서 대중적으로 크게 확장이 되었다. 이제는 대다수 시인들의 보범답안이 마치 '낯설게 하기'인 것처럼 굳어져..

권두언 2023.06.08

부고_김규화 시인 별세

■ 김규화 시인 별세(1939~2023) 월간 시문학사 대표이자 『시문학』 발행인인 김규화 시인이 지난 2월 12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2020년 남 편 문덕수 시인에 이어 김규화 시인마저 세상을 떠나며 부부가 발행해 온 52년 역사의 『시문학』은 2월호(통권 619호)를 끝으로 종간한다. 전남 송주에서 태어난 김규화 시인은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현대문학』에 「죽음의 서장」, 「무위」, 「무심」이 추천돼 등단했다.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인 문덕수 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과 결혼했다. 1977년 문 시인이 시문학사를 인수하면서 남편과 함께 결호 없이 『시문학』을 발행했다. (p. 254) ---------------------------- *『현대시』 2023-3월(399)호, ww..

권두언 2023.06.04

문협 새 집행부에 바란다(부분)/ 유자효

中 문협 새 집행부에 바란다(부분) 유자효/ 시조시인 · 한국시인협회 회장 ---前略--- 요즘은 늦게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습니다. 60대, 70대에 등단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는 자연수명이 늘어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진 까닭이 아닌가 합니다. 서울 중구문화원에서 시 창작 교실을 할 때, 첫 기 수강생 가운데 80대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수필로 이미 등단한 분이었는데, 시를 배우려고 나온 것입니다. 남편을 사별하고 문학으로 제2의 인생을 열어가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몇 달 뒤에 고교 동창생 한 분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유명한 문인의 따님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문학평론으로 한 획을 그은 분이지만 따님은 신산辛酸한 삶을 사신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단 시 공부를..

권두언 2023.05.20

벽두(劈頭)/ 박무웅

벽두劈頭 박무웅 벽두부터 사람이 왔다. 오늘 온 사람은 작년에 왔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다. 벽두란, 머리로 먼저 깨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머리는 겉이 깨지면 피가 나지만 그 궁리가 깨지면 지혜가 트인다. 벽두, 첫날에 올라탔으니 이제부터 매일, 매 일에 선두다. 벽劈을 깨트렸으니 밀고 나가면 된다. 나는 새로 도착한 사람, 벽두라서 머리가 근질거리는 사람, 태양이 미명未明을 깨듯 초승달이 캄캄한 밤하늘에 작은 틈을 내듯 벽을 깨고 선두가 되는 사람, 그는 누구인가? -전문- --------------------------- * 『문학의 집 · 서울』 2023. 3월(257)호, 2쪽 에서 * 1995년『심상』으로 등단, 시집『패스브레이킹』등

권두언 2023.05.18

계간『시로여는세상』 2021-겨울(80)호_후기/ 이명수

계간 『시로여는세상』 2021-겨울(80)호_후기 이명수/ 시인 20년 동안, 2002년 봄호부터 2021년 겨울호까지 꼬박 20년 세월이 흘렀다.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어라'라는 경구를 새겨온 세월이다. 20년 동안의 노심초사勞心焦思가 새우잠이라면 이번 겨울호로 통권 80호를 펴낼 수 있었던 것이 적으나마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훗날 『시로여는세상』의 열정을 기억해주는 날이 있겠지. 고비마다 힘겨울 때면 제주 바다 작은 포구에 앉아 하릴없이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다 바로 눈앞에서 넘실대는 남방큰돌고래를 보며 그래도 고맙다는 생각하고 훌훌 털고 일어났다. '어디 비 오고 바람 부는 날만 있으랴'라고 혼잣말을 하며······. 그동안 『시로여는세상』을 아껴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20년을..

권두언 2023.04.30

시, 몸 그리고 싱귤래리티 Singularity(부분)/ 이재복

中 시, 몸 그리고 싱귤래리티Singularity (부분) 이재복 | 본지 주간 몸이 의식 속에서 망각되면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뇌'일 수밖에 없다. 요즘은 모든 것이 '뇌'로 통한다. 바야흐로 뇌중심주의 시대의 도래라고 할 수 있다. 이 뇌의 극대화가 우리 시대의 지상 목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싱귤래리티(Singularity, 인공지능이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시점)'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이 지점에 이르면 현재의 인류와는 다른 인류, 곧 '포스트휴먼(Posthuman)'이 탄생하게 되고, 이때부터 새로운 역사(인류세 Anthropocene epoch)'가 시작되는 것이다. 캔 리우 같은 SF 작가들의 소설에서 다루어지면서 널리 대중화된 이 개념들은 허..

권두언 2023.04.27

보수와 진보(부분)/ 오세영

中 보수와 진보(부분) 오세영/ 시인 춘추전국 시대의 난세를 요순堯舜의 성왕정치聖王政治로 극복코자 했던 공자의 왕도사상王道思想은 비록 과거 지향적이었다 할지라도 당시로서는 진보적이었으며 서구의 르네상스 또한 그리스 고전의 재발견이라는 점에서 과거적인 것으로부터 깨우침을 얻었지만 중세에 대해서는 진보적이었다. 즉 삶의 발전이란 과거적인 것의 전통이나 가치를 재발견 혹은 선양하는 데서 오히려 완전을 기할 수도 있다. 이는 문화 예술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예컨대 문학사에서는, 세계 문예사조는 일반적으로 '낭만적인 것'과 '고전적인 것'의 상호 교차 반복으로 전개된다는 인식이 확립되어 있다. 그 어느 시대나 새롭게 등장한 사조(진보적 사조)란 실상 그 처한 현실을 과거적 원리(보수적 가치)를 통해 계승 발..

권두언 2023.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