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언 243

시동인『미루』의 창을 열며/ 하두자

미루의 창을 열며 하두자 이제 막 당도한 가을의 심장에 손을 쑤욱 집어넣고 가을을 휘저어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납니다. 여기 일곱 명의 시인이 의기투합하여 시의 심장에 자신들을 쑤욱 집어넣고 시를 휘저어 보려 합니다. 각각의 시인들은 자신만의 시를 두 어깨에 걸쳐 메고 한순간의 쉼도 없이 터벅터벅 걸오온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미루'의 탄생을 알립니다. 뒤라스가 『고독한 글쓰기』에서 '쓴다는 것은 말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일이다. 그것은 비로소 소리 없이 울부짖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일곱 명의 시인들은 쓰되 설명하지 않고 말하되 공허하지 않고 침묵하되 거대한 메아리처럼 독자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시인들입니다 시가 때론 자연을 노래하고, 때론 서늘한 존..

권두언 2023.12.16

복장 터지는 날(부분)/ 강기옥

中 복장 터지는 날(부분) 강기옥/ 시인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前略) 복장腹臟은 불상佛像을 제작한 후 붓다의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해 빈 뱃속에 넣는 물목을 말한다. 가슴 부위의 후령통에는 붓다를 상징하는 사리, 소형 금불상, 불경, 발원문 등을 담고 흔들리지 않도록 공간을 솜이나 비단으로 가득 채운다. 그래야 기도의 대상으로서의 불상이 된다. 1984년 7월에 오대산 상원사의 문수동자상 복장품에서 2점의 발원문과 조선 전기의 복식, 전적류 등 23점이 발견되었다. 첫 번째 발원문은 세조 12년(1466)에 의숙공주와 남편 정현조가 세조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오대산 문수사에 여러 불·보살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고 두 번째 발원문은 1599년에 2구의 문수동자상과 16구의 나한상 등..

권두언 2023.11.20

isseu 재생산/ 이현승

isseu 재생산 이현승/ 본지 편집 주간 이번 『계간 파란』에서 마련한 이슈의 주제는 '재생산'이다. 오늘의 시(문학)를 위기로 진단하고, 우리 시대의 재생산 구조를 돌아보는 한편, 시의 내벽을 허물어 새로운 시의 비전을 찾아보고자 한다. 플랫폼과 미디어의 변동이 발 빠르게 자리를 바꿔 가는 대전환의 시대에 포노사피엔스처럼 새로운 미디어를 장착한 세대의 등장, 그러나 기술적 진보가 통상 정치적 진화에 유리했던 과거의 기억과는 별도로 유례없는 정치적 보수화가 가속화되는 지금 여기에서 시인은 어떻게 태어나고 자신의 영토를 확립해 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등단과 시집 출판, 대학의 전공 커리큘럼의 배치, 문학상(혹은 기념사업) 같은 전통적인 규범 속에서 시와 시인이 재생산되는 시스템을 재인식하며, 해당..

권두언 2023.11.10

'시인과 시'로부터 '서정적 파워와 운율의 룰'까지(부분)/ 노창수

'시인과 시'로부터 '서정적 파워와 운율의 룰'까지(부분) 노창수/ 시인 ·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前略··· 그런데 말입니다. 어떤 시는 이 비소통의 언어를 표출하면서도 무의식으로 더 파고 들어가 다른 제3의 '자의식'이란 성城을 쌓기도 합니다. 이때 당면한 심리기제의 기복에 따라 와 를 넘어서, , 처럼 단절되고, '의식구조'와 '무의식구조'가 넘나들지만 결국 또 단절로 이어지길 반복합니다. 일부 독자는 이런 시가 난해해 읽을 수 없다고 불평을 하지요. 하지만 그건 현대사회와 인간심리가 다층적인 복합구조란 데서 파생되는 현상이라면 좀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윤리를 떠난 현실문제의 맥락에서 보아 사회학적인 시라 할 수 있겠지요. (p. 24) ···中略··· 현대 시인들의 심리시, 기..

권두언 2023.11.07

한인문학동인회 사화집_하와이 시심(詩心) 100년_머리말/ 최종고

하와이 시심(詩心) 100년 - 하와이 한인문학동인회 엮음 최종고 하와이라면 일반적으로 "태평양의 교차로", "동서의 접점" 등 독특한 매력을 가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시인 괴테(Goethe)도 하와이를 '순수자연의 제2의 낙원'으로 동경하였다. 이곳에 한국인이 발을 붙여 산 지도 100년을 넘겼다. 인간이 사는 곳이면 애환이 있게 마련이지만, 하와이 한인사는 고국의 역사와 직결되면서 그 진폭이 깊고 넓었다. 그런 경험과 감상이 쌓여 하와이의 한인 시심詩心을 자라게 하였다. 1903년 첫 이민선이 온 직후부터 우리의 선배 조상들은 모국어로 시를 썼다. 고국을 그리워하기도 했고, 자연을 읊기도 했다. 그들이 만든 신문 잡지에는 빠짐없이 시가 실렸다. 한국인의 시심은 국경을 초월했다. 이러한 시심의..

권두언 2023.11.03

isseu 핫 서머 더비/ 김건영

issue 핫 서머 더비 김건영/ 본지 편집위원 젊음은 실패할 기회가 있다. 그래서 젊음의 에너지는 정확히 진단하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능하고 안전한 일에만 도전하는 일은 얼마나 지루한가. 절망과 좌절은 문학적 풍요를 가져온다. 문학의 풍요는 다시 패배와 슬픔을 껴안는다. 새로운 목소리는 그래서 기필코 아름다워진다. 파란은 젊음을 응원하는 일이다. 세계는 젊음에 무한한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직 모든 젊음이 우대받는 자리는 부족하다. 가장 뜨거운 신인의 목소리가 여름의 지면에 자리 잡은 이유이다. (p. 15) ----------------------- * 『계간파란』 2023-여름(29)호 에서 * 김건영/ 201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파이』

권두언 2023.11.03

삼포시대, N포시대라니!(부분)/ 강정화

부분 삼포시대, N포시대라니! 강정화/ 시인 ·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 前略··· 세계의 역사는 언제나 같은 방향과 모습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는 밤이 있고 낮이 있듯이 빛나는 영광과 그늘진 어둠이 수시로 자리를 바꾸면서 인류의 역사는 이어져 간다. 한 나라 안에서도 멸망과 재건을 반복하듯이 말이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도 이천 년 대 초에는 흙수저니 헬조선이니 하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언어가 의식을 잠식해 가듯이 주어진 현실을 부정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2011년 '직장'과 '결혼'과 '출산'이라는 세 가지 삶의 끈을 놓아버린다는 의미의 신조어 삼포시대가 처음 등장했을 때 젊은이들이 유행처럼 따라 하던 것이 차츰 새로운 의미를 더 보태며 5포 7포 9포 마..

권두언 2023.10.04

이제 가을이다(부분)/ 진란

이제 가을이다 진란/ 본지 부주간 ···前略··· 수많은 문예지가 우후죽순우로 발간되고 있지만 지면을 할애받지 않은 시인을 찾아 나선 『P.S』가 두 번의 계간지를 내는 동안 얼마나 노력했을까. 발표 지면을 찾는 시인들에게 희망의 등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기는 한 것일까. 어려운 시기에 창간을 하고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지만 유행이 아닌, 시와 동행하는 시인들에게 그리고 시에게, 시인에게서 그 징후를 찾아서 발견해보자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함께 손잡고 발간하다 보니 가을이다. AI시 써보기 등이 유행하지만 결코 서툴게 어눌하더라도 시인이 쓴 시의 감성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짜임새 좋은 훌륭한(?) 시도 좋겠지만 느리지만 홀로 지어야 할 거미의 집처럼 자기 속에서 끄집어낸 시어와 감성으로 촘..

권두언 2023.09.29

나는 이제 무슨 시를 쓰나(전문)/ 전형철

나는 이제 무슨 시를 쓰나 전형철 못된 버릇이 있었다. 못됐다기보다 짓궂었다고 포장할 수 있겠다. 대학 때였고, 2학년이 되어 후배들이 입학할 때부터였다. 시 하나만 생각하고 국문과에 진학한 꽤 순수한(?) 문청이었던 나는 듣는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되자, 술자리 첫 만남에서 이런 주문을 했었다. 네가 좋아하는 시 말고 네가 외울 수 있는 시를 하나 외워 봐라. 당황한 후배들은 입시 때 풀었던 시 몇 구절을 생각나는 대로 주워 오거나, 거개 정현종 시인의 「섬」이나 유치환 시인의 「그리움」 등을 더듬더듬 외우곤 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섬 사이에 파도, 파도, 파도, 어쩌라고, 어쩌라고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짧게 선選한 이유를 묻고 다음 답시 낭송이 이어졌다. 당시 이렇게 저렇게 나는 1..

권두언 2023.08.21

상상력과 체험(부분)/ 송기한

에서 상상력과 체험(부분) 송기한 문학이 근대 사회로 들어오면서 소위 근대성의 제반 논리와 결부되면서 서구적 의미의 자율성이 새삼 강조되었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것은 시의 근대화 과정과 분리할 수 없었는데, 특히 시의 경우에 있어서는 자유시형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무목적이 합목적성'이라는 칸트적 예술의 자율성에 근거한 것이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시의 내용이 함의하고 있는 근대성 내지는 현대성의 문제였다. 가령, 시의 계보를 체험의 영역에 둘 것인가, 아니면 자율성에 기반한 상상력에 둘 것인가를 기준으로 시의 현대성이랄까 근대성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것이 카프 문학을 비롯한 진보 문학이었고, 후자를 대표..

권두언 2023.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