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시집·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제9회 질마재문학상 심사평/ 문효치 · 유성호(글)

검지 정숙자 2018. 5. 31. 02:47

 

 

<특집_제9회 질마재문학상 심사평>

 

 "먼 산 이끄는 외솔"의 고독과 시적 진정성

 

   본심 : 문효치 · 유성호(글)

   예심 : 미네르바 편집위원회

 

 

  이번 제9회 질마재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매우 개성적이고 깊이 있는 성취를 보여준 시인들의 시집들을 여러 차례 읽어갔다. 예심을 통해 올라온 시인들은 이미 우리 시단에서 중진 및 중견의 자리를 확고하게 잡고 있는 분들인지라, 미학적 완결성과 문단적 위상을 두루 갖추고 있는 시사적 범례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은 이분들의 시집에 대한 여러 차례의 의견 제시와 토론을 나누었는데, 그 결과 시인으로서의 품격과 고독, 작품의 지속성과 균질성을 줄곧 보여온 정숙자 시인의 시집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정숙자 시인은 1980년대 말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시대의 외곽에서 자유로운 언어와 영혼으로 개성적인 위상을 확보해왔다. 오로지 '시'를 통해, 꾸준히 흔들림과 착근에 대한 교차적 의지를 통해, 스스로 감내해야 할 운명으로서의 변방의 삶을 사랑하는 과정을 아름답게 보여주었다. 특별히 이번에 수상작으로 선정된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파란, 2017) 은, 삶의 비애나 환멸이나 절망에서 벗어나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삶의 여러 겹을 사유하고 표현하는 시인의 모습을 잘 드러내 보여주었다.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음 사이에 반복"(싯다르타)되는 리듬을 통해 정숙자 시편은, 시가 가질 수 있는 원심적 자유로움의 한 극점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유와 감각이 경쾌하게 상승하고 흐르듯 번져가면서 나타나는 실존적 가파름의 과정을 다양하고도 풍부한 형상 속에서 노래하였다. 이제 우리는 "오로지 작품만이 중력이었던"(「관, 이후) 한 시인의 삶을 경의로 바라보게 된다. 잠시 아득해지는 철저한 자발적 고독을 통해 그는 이처럼 깊은 진정성으로 우리 시단에서 결코 만나기 힘든 여전한 미더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니체는 "고독은 나의 고향(Einsamkeit ist meine Heimat)"이라고 했는데, 그 고독이 바로 '시인 정숙자'를 오래도록 끌어온 힘이었을 것이다. 작품의 균질성과 그동안 쌓아온 일관성 그리고 한결같은 심화 과정에 가볍지 않은 격려가 얹혀야 한다고 심사위원들은 뜻을 모았다. 등단 30년을 맞는 시점에 거듭 이번 수상이 기쁜 소식이 되었기를 바라면서, 우리 시단에서 "먼 산 이끄는 외솔"(「굿모닝 천 년)로 단호하게 남아주기를 소망해본다.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면서, 정숙자 시인만의 연금술이 지속적 진경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마음 깊이, 희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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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2018-여름호 <특집 제9회 질마재문학상 수상자 정숙자 시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