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가 읽은 나의 시

[신상조의 문향만리] / 어느 아름다운 날 :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3. 7. 5. 02:40

 - ⟪대구일보⟫ 2023. 7. 2. | 신상조의  문향만리 _작품론 

 

    어느 아름다운 날

 

    정숙자

 

 

  딱 하루만 더 살아라. 그 하루에 뭘 하겠느냐 물으시오면 부모님 산소에 가겠습니다-하겠습니다. 늙은 모습 이대로, 쓸쓸하기 그지없는 마음 이대로 고속버스/덜컹버스를 타고 어릴 적 나폴나폴 오가던 길. 그 구름 그 바람 그 무덤 앞에 깊이깊이 절하겠습니다. 어머니- 불러보겠습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오지는 말고 그 무덤가에서 눈감아도 좋겠습니다. ‘가자, 하루가 다 되었다.’ 기척을 넣으시면 저는 그저 하겠습니다. 자식들을 굳게 믿고 다독이고 사랑하신 분. 어머니는 유독 저를 가엾게 여긴 분이었습니다. 저 역시 어머니를 참으로 가엾게 고맙게 여겼습지요.

 

  부모자식지간이 아니면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쏟아부어도- 쏟아부어도- 부모자식지간이 아니라면 그 사랑은 그만큼 빛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어머니를 잊을 때조차 어머니는 저를 위해 기도하셨는걸요. “어머니, 누구를 제일로 보고 싶으세요?” 임종을 앞둔 어머님께 여쭈었더니,

 

  “어머니···라고 가까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여든셋의 어머니께서 뜻밖에도, 정말이지 뜻밖에도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이 아니라 당신의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셨던 겁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결국 내가 사랑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한 사람을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을요.

 

  커튼이 조금씩 흔들립니다. 창틈이 열렸나 밀어보았습니다만 제대로 닫혀 있군요. 지금은 겨울밤입니다. 지난날 어머니도 이런 밤을 보냈을까요? 나중에- 나중에- 제가 아주 죽고 없을 때 제 자식들도 이렇게 늙은 모습으로, 쓸쓸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인생을 헤아려보게 될까요?

   - 『전북문학』 247호( 2010. 5. 30.발행), 전문

 

 

 [신상조의 문향만리] _「어느 아름다운 날작품론/ 신상조 문학평론가 

 시는 그 출처가 전북문학247호였다. 정확히 시집 출처를 밝히기 위해 알아보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여태까지 시인의 어떤 시집에도 수록되지 않았다는 거였다. 기왕 발표한 시를 시집에 넣지 않은 이유는 탐탁지 않아서일 경우가 많다. 짐작건대 이 작품이 시인의 시 세계와 맞지 않는 이질적인 성격을 가져서이지 싶다. 일찍이 시인은 구조주의에서 포스트 구조주의 이론이 시에 육화되는 과정을 보여준 바 있다. 특히 관념의 상징화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그의 작업에 비해, 어느 아름다운 날은 시의 언어가 지니는 함축성이 배제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다시 말해 짧은 산문으로 여겨질 만큼 지나치게 시어의 활용이 직접적이고 진솔함이 시인은 불만이었을 터이다.

 

  시적 자세의 결여”를 따지는 일은 시인 몫이나, 곡진함에서 비롯한 간절성과 순수성은 그 자체로 독자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이 시는 제목과 내용의 괴리를 매개로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는 화자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요구한다. “딱 하루만 더 살아라. 그 하루에 뭘 하겠느냐”는 물음에 대답하겠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참혹한 마음이나 할 수 있는 가정이다. 천지사방이 막혀서 불러볼 사람 하나 없을 때, 인생에 절망하여 “신이여. 나 죽고 싶어요”(랭스턴 휴즈)라고 울부짖는 사람이 죽기 전, 부모님의 무덤을 찾아가며 부르는 노래. 해서 평생을 속으로 울었던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자식들한테로 돌아오며 부르는 노래가 「어느 아름다운 날」인 것이다. ▩  ⟪대구일보⟫ 2023.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