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별/ 정숙자 떠돌이별 정숙자 남쪽이 어디냐 동전에게 묻는다 모르거나 잘못 잡은 방향은 한낮일수록 더 어둡다 많은 이들이 가리키지만 그들이 일러주는 남쪽은 그들의 방향일 뿐 그들이 지시한 남쪽이 나에게는 서쪽이던 때 있었다 그들이 지시한 북쪽이 나에게는 동쪽이던 때 있었다 나도 나의 ..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2010.09.21
여름이 떠나는 아침/ 정숙자 여름이 떠나는 아침 정숙자 하루 두어 통의 편지를 쓰며 내 가을은 저물고 싶다 오랜 벗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게 오늘을 가능케 한 모든 이에게 정스럽게, 정성스럽게 손기척을 보내고 싶다 꿈 등속은 내리어놓고 책 읽고 산책하고 가장 깨끗한 시간을 찍어 신 앞에 접어 올릴 무릎을 닦..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2010.09.21
문인석/ 정숙자 문인석 정숙자 아스라한 침묵이 돌을 낳는다 누구도 모른다 낳은 이만이 쓰다듬는다 햇살 한 줄기 닿지 않는 길 구르다 묻히다 홀연히 증발한 다 봉인되어 익어가는 말 어떤 울음은 종유석으로, 어떤 참회는 대리석으로, 어떤 그리움은 홍보석으로 살을 굳힌다 고도로 압축/정화된 언어..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2010.09.21
서점에서 꽃을 사다/ 정숙자 서점에서 꽃을 사다 정숙자 갈피마다, 행간에는, 음보에서, 음절에도 꽃수술향기 꽃 샘향기 꽃받침향기 잎사귀향기 잎겨드랑이향기 줄기향기 뿌리향기 어린이 외국어 인문 잡지 정치/법률 취미실용 학습 사전 수험서 예체능 의학 자연 정부/연구소간행물 종교 컴퓨터 커피 한 잔 값이면 ..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2010.09.21
숲/ 정숙자 숲 정숙자 말이 추려진다 살아남은 말은 꽃보다 별보다 바람과 바람 사이 나비보 다 향긋하다 말들은 견고함을 지향한다 한 마디의 말은 꿈틀대고 한 무더기의 말은 출렁거린다 폭풍을 유발한다 시간은 그것을 흐름이라 말한다 넉넉하다 말은 예전에도 오늘도 묘한 뼈를 숨기기에 푸른 ..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2010.09.20
지구여행권/ 정숙자 지구여행권 정숙자 우리 집 살림살이 여행보다 책이 알맞다 초원이나 내뻗은 강 눈앞에 없을지라도 책 속에는 한 그 루 보리수가 자란다 가지를 따라 하늘이 넓어지고 새들이 날고 잎새들 달랑 달랑 바람을 닦는다 오래된 책들은 어느 갈피에서도 등을 보이지 않는다 귀 시린 누옥에 군..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2010.09.20
물별에 대한 주석/ 정숙자 물별에 대한 주석 정숙자 물결이 햇빛을 반사할 때 생기는 반짝거림을 한 마디로 표현할 낱말이 없었습니다. 그것을 설명하다보면 문장의 리듬이 풀어져 버리고 말지요. 조어가 절실했습니다. 가령 "오늘 오후, 버스 타고 한강을 지나는데 물별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라고 하면 금방 통..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2010.09.19
둥근 책/ 정숙자 둥근 책 정숙자 속독을 허락하지 않는다 갈피마다 바람 불고 여백에서 풀이 자란다 행간을 타고 세월이 흘러든다 오후 네 시/금요일/시월쯤으로 해 두자 이 모두가 쉰셋의 각도로 기울어진 나의 오늘이다 ․인간은 인간적일 때만 인간이다 ․열심히 기는 것이 나는 것이다 ․죽..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2010.09.19
전일 상품/ 정숙자 전일 상품 정숙자 먹다. 먹히다먹힌다먹혔다. 사라짐이 보이는 흐름이다. 먹는다먹었다,가 아니다. 먹히는 쪽은 늘상 눈을 뜨고도 먹 는 쪽을 먹지 못한다. 시냇물 대 바다의 관계를 신은 왜 풍 경으로 설정하였나. 그 단순한 그래프 아래 소용돌이치고 술렁이고 쓰러지는 줄기들. 밤낮으..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2010.09.19
이인일실(二人一室)/ 정숙자 이인일실二人一室 정숙자 해돋이마다 물을 갈아준다 그러나 내 환부가 아무는 만큼 꽃들은 죽어간다 물도 깜깜 썩어간다 그럼에도 꽃은 물은 서로를 돕고 있다 끝까지 살고 있다, -이것이 고요다 고요의 몸빛이다 담담히 에두르고 서 있는 꽃병 그만 자살에의 욕구를 내려 놓는다 몇십 .. 제7시집 · 열매보다 강한 잎 2010.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