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커피를 마시며/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2. 8. 24. 01:03

 

 

   커피를 마시며

 

    정숙자

 

 

  우리가 오늘

  뜨거운 한 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해야 하리라

 

  희망이 유산되어

  그로 인한 슬픔이

  마음과 정신을 적실지라도

  우리에게는

  시간과 사랑이 남아 있으므로

 

  새지 않는 집과

  굶지 않을 양식

  살을 감추어 줄 몇 벌의 옷과

  건강한 몸

  게다가 영혼이 건재하므로

 

  이만큼을 소유하고도 부족하다면

  우리는 분명

  사치를 꿈꾸는 게지

 

  어떤 이는 이 시간에도

  끼니를 위해

  불구의 몸 엎드려

  노래를 팔고 있을텐데

 

  희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모두 이룰 수 없다는 것쯤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최소의 상황에서도

  최대의 것을 발견해야 하리라

  아, 이렇게도 뜨거운 커피

  그리고 밖에는 빛나는 태양.

 

    -------------

  * 시집 『이 화려한 침묵』에서/ 1993. 4. 26. <명문당> 발행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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