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며
정숙자
우리가 오늘
뜨거운 한 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해야 하리라
희망이 유산되어
그로 인한 슬픔이
마음과 정신을 적실지라도
우리에게는
시간과 사랑이 남아 있으므로
새지 않는 집과
굶지 않을 양식
살을 감추어 줄 몇 벌의 옷과
건강한 몸
게다가 영혼이 건재하므로
이만큼을 소유하고도 부족하다면
우리는 분명
사치를 꿈꾸는 게지
어떤 이는 이 시간에도
끼니를 위해
불구의 몸 엎드려
노래를 팔고 있을텐데
희망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모두 이룰 수 없다는 것쯤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최소의 상황에서도
최대의 것을 발견해야 하리라
아, 이렇게도 뜨거운 커피
그리고 밖에는 빛나는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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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이 화려한 침묵』에서/ 1993. 4. 26. <명문당> 발행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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