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집 · 이 화려한 침묵

한 남자/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2. 8. 25. 13:52

 

 

    한 남자

 

     정숙자

 

 

  가을이

  한 사람의 남자였다면

  나는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

  그에게 모든 걸 바쳤을 것이다

 

  그렇게나 맑고

  높고

  풍요로운 한 남자

 

  꼭이 나에게 주려는 게 아니더라도

  그가 들고 섰는 코스모스와 들국화

  갈대와 억새꽃

  그리고 그 투명한 잠자리들을

  별처럼 공중에 띄우는 그

 

  그가 설령

  나를 거들떠보지 않는다해도

  짝사랑할 수 있음에 기뻐하며

  귀뚜라미와 함께

  온밤을 노래하였으리라

 

  가을이 한 사람의 남자였다면

  나는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

  기꺼이 그를 찬양해 죽는

  낙엽이 되었으리라

 

  빨갛게 얼어서 지는 때에도

  그 스치는 바람이 달가워

  아, 나는 행복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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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이 화려한 침묵』에서/ 1993. 4. 26. <명문당> 발행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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