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웃음 ▼
허정
실낱 같은 인연 하나 스친 적 없는 길냥이를 묻기 위해
삽과 괭이를 든다는 것은
나의 무덤을 내 손으로 파 보는 예행연습 같은 것
겨울나무의 얼어붙은 뿌리와 뿌리 사이
강보에 싸인 아기의 부피와 질량이 덮일 만큼
구덩이를 파는 동안
이 말도 되지 않는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산길에서 우연히 만난 녀석의 푸석푸석한 사체와
갈참나무 옆에 기대어 있던 삽과 괭이는
왜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왜 나는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언 땅을 괭이로 파내고 그 자리에 낙엽을 깔고
시신으로 만난 인연을 다듬잇돌 크기의 구덩이에 눕혔는지
왜 그때 하필이면
겨울 햇빛이 녀석의 흰 이빨에 반사되어
내 눈동자에 빨간 웃음으로 박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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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2-2월(386)호 <신작특집>에서
* 허정/ 2002년『시와 생명』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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