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도는 새벽
정숙자
열 달 동안이나 덮어놓고 살았어
시 한 줄 쓰지 않고 (ㅎㅎ) (ㅋㅋㅋ)
그렇게 살았다면 아무것도 안 한 거지
보이지 않는데 느껴지지 않는데 잡히지도 않는데
썼다면, 그건 억지였거나 헛것이거나 사기였겠지
열린 열 시에도 유리창 너머 리기다소나무 하염없이 바라보며 누워있을 수 있는 자유. 일상에 대한 강박 없이 퍼져버릴 수 있는 멈춤. 그 늘어진 자유의 무거움을 아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을 거야. 침묵밖에 남은 게 없는 공간을 (ㅎㅎ) (ㅋㅋㅋ) 무작정 견디었지만
억지였거나 헛것이거나 사기였거나
어쨌든 써야 했을까
카지노에 빠진 게이머와는 다르니까
우리에게 시는 인생이니까
다시 세워야 할까
다시 일으킬 수 있을까
당장은 불이 안 붙고 타닥거릴지라도
나중에는 중심을 잡고 타올라 줄까?
그런데, 그런데 문제가 있어
그 열 달 동안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어
모순을 부질없음을 초저녁별이 어둠을 본 만큼 봤어
그런데도 촛불이 다시 타올라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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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월간 『시인플러스』 2013. 9-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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