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프로젝트-55
정숙자
우공이산// 내 몸에 흐르는 개울과 시내와 강물은 붉고 따뜻하지만, 지구를 싸고도는 동맥과 모세혈관은 무색투명하고 부드럽고 차다.
내 몸속 피가 고갈되면 나는 그 즉시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시신조차 머잖아 먼지가 되고 말 것이다. 육체가 흩어지고서야 정신인들 말해 무엇하랴. 그를 일러 죽음이라 꺾고.
지금 당장 컵에 받으면 먹을 수 있는 물, 채소 한 잎 헹구지도 않은 물을… 변기에 쏟아버리는 일을 나는 차마 수용하지 못한다. 그건 ‘물의 굴욕’, ‘물의 굴욕감’이 깊이 전해져.
주방에서, 다용도실에서 빨래든, 채소든, 그릇이든 2차 3차 헹군 물이거든 화장실로 옮겨 다시 한번 살려 쓴다. 그건 ‘물의 자존심’, ‘물에 대한 오마주’ 한 옴큼이라도 애틋하다.
글을 읽느니보다, 돈을 버느니보다, 벗을 사귀느니보다도 기초단위에 속한, 지구에 대한 내 나름의 예의라 할까. 종이 한 장, 음식 한 수저, 모든 사물은 물의 원소/분자가 아닐까.
어느 발명가가 재활용수 배선을 만들어 각 가정에 보급한다면 지구 혈관은 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오래된 사랑이다. 몇 움큼의 물을 살리려고 나는,
가끔은 외출에서의 용변을 삼가고 집에 돌아와 해결한다. (물과 나와의 1:1 신뢰) 요즘은 바퀴 달린 <효도 의자>에 물그릇을 싣고 옮기는데, 이는 요가 동작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수도 검침원께서 숫자를 늘려 적자고도 한 적이 있다. 쑥 올라가지 않는 숫자를 염려해서였지만, 곧 내 계량기를 믿어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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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21-겨울(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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