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이슬 프로젝트-55

검지 정숙자 2022. 1. 8. 01:33

 

    이슬 프로젝트-55

 

    정숙자

 

 

  우공이산// 내 몸에 흐르는 개울과 시내와 강물은 붉고 따뜻하지만, 지구를 싸고도는 동맥과 모세혈관은 무색투명하고 부드럽고 차다.

 

  내 몸속 피가 고갈되면 나는 그 즉시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시신조차 머잖아 먼지가 되고 말 것이다. 육체가 흩어지고서야 정신인들 말해 무엇하랴. 그를 일러 죽음이라 꺾고.

 

  지금 당장 컵에 받으면 먹을 수 있는 물, 채소 한 잎 헹구지도 않은 물을 변기에 쏟아버리는 일을 나는 차마 수용하지 못한다. 그건 물의 굴욕’, ‘물의 굴욕감이 깊이 전해져.

 

  주방에서, 다용도실에서 빨래든, 채소든, 그릇이든 2 3차 헹군 물이거든 화장실로 옮겨 다시 한번 살려 쓴다. 그건 물의 자존심’, ‘물에 대한 오마주 한 옴큼이라도 애틋하다.

 

  글을 읽느니보다, 돈을 버느니보다, 벗을 사귀느니보다도 기초단위에 속한, 지구에 대한 내 나름의 예의라 할까. 종이 한 장, 음식 한 수저, 모든 사물은 물의 원소/분자가 아닐까.

 

  어느 발명가가 재활용수 배선을 만들어 각 가정에 보급한다면 지구 혈관은 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나 혼자만의 오래된 사랑이다. 몇 움큼의 물을 살리려고 나는,

 

  가끔은 외출에서의 용변을 삼가고 집에 돌아와 해결한다. (물과 나와의 1:1 신뢰) 요즘은 바퀴 달린 <효도 의자>에 물그릇을 싣고 옮기는데, 이는 요가 동작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수도 검침원께서 숫자를 늘려 적자고도 한 적이 있다. 쑥 올라가지 않는 숫자를 염려해서였지만, 곧 내 계량기를 믿어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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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층』 2021-겨울(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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