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너무 많은 여름/ 강재남

검지 정숙자 2022. 3. 19. 13:32

 

    너무 많은 여름

 

    강재남

 

 

  좀 더 행복하거나 덜 불행한 삶으로 가요 좋은 여름과 여름이 키우는 대로 크는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가요 어정쩡한 날씨는 버려두고요

 

  비는 죄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대요 누군가 말한 것 같은데 생각을 굴려도 굴러가기만 하네요 빗물 고인 자리에 여름이 우거져요

 

  여름이 슬퍼요

  생각을 버리기로 해요

  딴청 부리기로 해요

  나는 걷고 있어요

 

  발자국 있는 곳마다 대추야자를 심어요 대추야자나무 열매를 거꾸로 키워요 배경으로 걸어두기 좋은 구도로요

 

  여름의 직관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말라가는 여름은 생략하면 그만이고요

 

  스물여섯은 견디기 힘든 숫자였어요

  그래서 발자국은 말을 잘 듣질 않았나 봅니다

  대추야자나무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표정

  난해하고 불가해한 얼굴이 대책 없이 흩어져요

 

  여름이 내게 준 건 깊은 잠과 자장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노래와 폭우와 빗줄기와 악수하는 사람 빗줄기를 타고 환상동화가 된 여물여섯의 사람

 

  여름을 거두어요 죽은 여름과 죽어갈 여름, 여름 귀퉁이를 오려 모으는 게 취향이라거나 아니라거나 상관 없어요 그냥 다 거두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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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반시』 2022 (119)호 <15인의 시/ 근작시>에서

  * 강재남/ 2010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이상하고 아름다운』『아무도 모르게 그늘이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