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우찬제_고통의 실타래, 신생의 실마리(발췌)/ 변씨의 사진 : 이승하

검지 정숙자 2022. 3. 18. 01:13

 

    변씨의 사진

        딸 민휘에게

 

    이승하

 

 

  琿春事件 후 和龍縣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을 전체가 불타고 있는데 '변씨'라는 30대 농부가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日軍은 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총을 쏘지 않고 태극기를 들고 있던 오른쪽 팔을 어깨에서부터 내리쳐 잘랐다. 오른팔과 함께 태극기가 떨어졌다. 변씨는 남아 있는 왼팔로 태극기를 집어 들고 다시 또 '독립 만세'를 외쳤다. 日軍은 일본도를 들어 다시 왼쪽 어깨를 내리찍었다. 변씨는 또다시 만세를 부르고 땅을 붉게 물들인 선혈 위에 쓰러졌다. 이 광경을 뒤늦게 본 선교사가 변씨를 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는 이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죽었다.

  사진을 보면 변씨는 두 팔이 잘렸는데도 얼굴에 고통의 빛이 없고 눈은 부릅떠 있다.

  내가 일본 감옥에서 12년간을 지낼 때, 마음이 약해지거나 용기가 스러지려 하면 항상 변씨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고 눈물 흘리며 어금니를 악다물곤 했었다.

     李康勳, 「내가 겪은 일제 침략을 증언한다」

     ⟪동아일보⟫ 1982년 8월 7일 자

 

  살다 지쳐 괴로울 때면

  이 사진을 보아라

  가다 지쳐 멈추고 싶을 때에도

  이 사진을 보아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바닥을 골똘히 응시하는 눈을

  일본도에 잘려 나간 두 팔을

 

  애국은 들판에 씨 뿌리는 일이란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을 훔치며

  하늘 한 번 올려다보는 일이이란다

  짓밟는 무리가 아무리 많아도

  짓밟히는 무리는 힘을 기르고

  힘을 못 길러 쓰러지고 견디고

  견딜 수 없는 고통까지 견디고

 

  내 딸 민휘야

  내 태어난 이 땅에 네가 태어났으니

  내 죽을 이 땅에서 네가 죽을 것이다

  힘 못 길러 짓밟힌

  조상의 한 사람인 변씨

  그의 사진을 보며 네 아빠는 운다

  떳떳이 죽어간 조상 앞에서

 

  살다 지쳐 아주 괴로울 때는

  이 사진을 보아라

      -전문-

 

   고통의 실타래, 신생의 실마리 _폭력과 광기의 역설(발췌)_ 우찬제/ 문학비평가, 서강대 교수

  「변씨의 사진」의 도상 역시 매우 가혹하고 처참하다. 식민지 시절 증언 기사와 사진이 먼저 제시된다. 나라 잃은 백성 변씨가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다  일본도에 태극기를 들었던 오른팔에 이어 왼팔까지 잘려버린 사진, 기사의 증언에 따르면 "두 팔이 잘렸는데도 얼굴에 고통의 빛이 없고 눈은 부릅떠 있"었다고 했다. 이렇게 기사와 사진을 차례로 보여준 다음, 이 시의 부제가 환기한 것처럼, 딸 민휘를 청자로 삼아 도상을 풀고 딸에게 의미 맥락을 제시한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바닥을 골똘히 응시하는 눈"에서 시인은 "견딜 수 없는 고통까지 견디"는 모습을 직관하고, 딸에게 "살다 지쳐 아주 괴로울 때는/ 이 사진을 보"라고 말한다.8) 「주검과의 키스」*)가 도상의 서사화를 통한 메시지의 심화에 골몰한 경우라면 「변씨의 사진」은 도상에 대한 교술적 성찰을 통해 역사적으로 아픈 기억을 상기한 사례다. 그 고통스러운 비극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면서 공공적 상상력을 풀어낸다. 인문적인 것,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의 무늬는 결코 개인의 내면만으로 조성될 수 있는 게 아니며 공동의 기억, 집단 무의식 등이 넓고 깊게 스미고 짜이며 구축되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 시인 이승하는 「변씨의 사진」의 풍경과 기억, 장면과 맥락을 더욱 심화 확대하면서 네 번째 시집의 표제작 『폭력과 광기의 나날』에 이른다. (p. 시 88-89/ 론 98)

 

  8) 이승하, 「주검과의 키스」, 『폭력과 광기의 나날』 22~23쪽

 

  * ) 블로그주: 본지, 『문파』 2021-가을(61)호/ 이 계절의 초대시인_대표시(85~887쪽)/ 「변씨의 사진」은 88쪽에서 열람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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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파 MUNPA』 2021-가을(61)호 <이 계절의 초대 시인/ 대표시/ 작품론 > 에서

  * 이승하/ 1984년《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시집『사랑의 탐구』『뼈아픈 별을 찾아서』『감시와 처벌의 나날』『예수 ·폭력』등, 평전『마지막 선비 최익현』『최초의 신부 김대건』『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청춘의 별을 헤다: 윤동주』등

  * 우찬제/ 1987년《중앙일보》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불안의 수사학』『애도의 심연』『프로테우스의 탈주』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