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폭우 지난/ 신철규

검지 정숙자 2022. 3. 16. 02:40

 

    폭우 지난

 

    신철규

 

 

  나는 지은 죄와 지을 죄를 고백했다

  너무나 분명한 신에게

 

  빗줄기의 저항 때문에,

  노면을 가득 메운 빗물의 저항 때문에,

  핸들이 이리저리 꺾인다

  지워진 차선 위에서 차는 비틀거리고

 

  빗소리가, 비가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가,

  차 안을, 메뚜기 떼처럼, 가득 메웠다

  내 가슴을 메뚜기들이 뜯어 먹고 있다

 

  뻑뻑한 눈

  비틀거리는 비

  폭풍우를 뚫고 가는 나비처럼

  바닥에 떨어져 젖은 날개를 퍼덕이는 몸부림처럼

 

  목에 숨이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찬 숨이 나오지 않는다

 

  너무나 분명한 신

  너무나 많은 숨

 

  이미 울고 있었지만 울고 싶었다

  이미 살아 있었지만 살고 싶었다

  이미 죽었지만 죽고 싶었다

 

  운전석 천장에 물방울이 맺힌다

  추위에 몸이 떨린다

 

  컴컴한 방, 손전등을 입에 물고 두 손으로 비밀 금고의 다이얼을 돌리는 도둑처럼 앞으로 전진

 

  나는 다시 신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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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파 MUNPA』 2021-가을(61)호 <시마당> 에서

   * 신철규/ 2011년《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