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오대혁_기억의 힘과 시적 화자 뒤집기(발췌)/ 나 어릴 적엔 : 한희숙

검지 정숙자 2022. 3. 13. 01:53

 

    나 어릴 적엔

 

    한희숙

 

 

  고등동 입구 벙어리 방앗간 옆

  성무반점에서 짜장면 먹던 날엔

  하루 종일 윗입술에

  까만 춘장 묻히고 자랑하고 다녔다

 

  이웃집 아낙네들 수군거리던

  작은댁이라는 빨간 벽돌 양옥집

  창가에 레이스 달린 커튼이 아름답고

  폭신폭신한 침대도 근사해 보여

  나의 장래 희망란에 "첩"이라 적어놓고

  엄마한테 종아리 피나도록 맞았다

 

  엄마가 참깨 볶는 날엔

  부뚜막 깨소금 단지에 들락거리며

  한 줌씩 입에 넣고 씹고 다녔다

  종일 내 몸에선 고소한 냄새 풍겼다

 

  다음 날엔 엄마가 참깨가루에

  고춧가루 섞어 놓았다

     -전문-

 

  기억의 힘과 시적 화자 뒤집기 _한희숙 시인의 시세계(발췌)_ 오대혁/ 시인, 문화평론가

  짜장면과 참깨의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유년의 추억, 거기에다 기괴한 삶의 파편처럼 다가서는 '작은댁', '첩'을 꿈이라 이야기했다가 흠씬 매를 두들겨 맞았던 기억이 똬리를 튼다. 춘장의 맛과 참깨의 고소한 냄새는 유년을 이야기하는 좋은 추억으로, 매의 기억 속에는 '빨간 양옥집'의 레이스 달린 커튼', '폭신폭신한 침대', 그리고 그것을 소유한 '첩'이 숨 쉬고 있다. 그것은 물적 욕망과 어우러진 '첩'에 대한 선망이 매를 부른 추억은 현재를 뒤트는 욕망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도덕률에 찌든 현재에 '첩'이라는 무의식적 욕망이 우스꽝스러운 세계와 연결되며 현재를 구원하게 만든다. 문학이 욕망의 대타라고 볼 때, 시인의 욕망 한 언저리에 놓인 무의식을 읽어내게 한다. 그것은 잠재된 것이면서 그 누구나가 억압된 욕망으로 갖는 세계라 볼 수도 있다. 어쩌면 시인은 그 언저리를 넘어서는 꿈을 기억 속에서 소환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거기에 선악의 도덕률을 갖다 대는 것은 위험하다.  (p. 시 24/ 평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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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시학』 2021-겨울(39)호 <책 속의 작은 시집/ 시평>에서

   * 한희숙/ 2010년『문파문학』으로 시 부문 & 2020년『경기수필』로 수필 부문 등단, 시집『길을 묻는 그대에게』등

   * 오대혁/ 제주 출생, 2005『신문예』로 시 부문 등단, 저서『원효설화의 미학』『금오신화와 한국소설의 기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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