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염의 침대에서 자다 · 87 외 1편
- 행복
김영진
나는 내 자신에게 너무 엄격했으므로 구름모자 벗듯 이제 용서를 빈다. 매일 아침에 거울 볼 때마다 신체적으로 못생긴 얼굴의 단점만 보였다. 하루를 되돌아보면 쓸데없는 충동 구매라든지 실수했던 일들만 떠올랐다. 그저 그런 일상 속에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나를 다그치곤 했다.
그런데도 친구들은 나를 좋아하고 심지어 사랑을 퍼주기까지 해주었다. 밤하늘의 빛이 온몸을 적셔주는 반짝 별 보면 경이로운 행복을 느낀다. 저 별들은 내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지 거룩한 호기심의 질문 던진다. 행복은 가끔 내가 열어둔 걸 잊었던 문으로 슬그머니 들어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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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염의 침대에서 자다 · 35
- 버스 안에서 생긴 일
부천에서 동인천 가는 버스 타고 중학교 다니던 때이다. 만원 버스 탔는데 여고생이 내 책가방을 무릎에 받아줬다. 동인천에 도착할 무렵 그 누나 아이 차거워 하며 놀란다.
가방 속 잉크병이 쓰러져 서서히 누나 치마가 물들었다. 이걸 어쩌나 얼굴이 빨개진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그 누나 잉크 색깔이 치마 색깔이라 괜찮다고 나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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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붉은 수염의 침대에서 자다』에서/ 2022. 1. 10. <리토피아> 펴냄
* 김영진/ 경기 인천 출생, 2017년『리토피아』로 등단, 시집『달 보드레 나르샤』『옳지, 봄』『항아리 속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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