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의 침대에서 자다 · 91
- 복령
김영진
가만히 눈 감으니 산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눈 뜨니 산이 내 속에 들어온다. 산에서 시선을 끌어들이는 것은 시리게 아프도록 베푸는 소나무 군락이었다. 군락지 찾아 산줄기 타는 길은 멀고 낯설지만 바람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산에서 길 잃어 헤매는 실수도 삶이 따분하고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산을 찾아가면 즐거워지는 건 신선하고 밝고 지칠 줄 모르는 동심 때문이다. 모든 선행은 용기의 사다리 타고 오르듯 도착해 소나무 뿌리 베고 누웠는데, 솔향 냄새 진하게 올라와 지팡이로 주위를 꾹꾹 눌러보다 뭉클 감촉이 왔다. 기회는 강력하듯 뿌리에서 복령을 캐내 미소 짓는데 익숙한 바람이 불어온다.
-전문-
해설> 한 문장: 화자가 자주 산에 가는 이유는 "신선하고 밝고 지칠 줄 모르는 동심" 때문이다. 산은 구획된 도시 혹은 규범적인 사회와는 대조되는 곳으로 거칠고 험함에도 무방비하고 무경계적인 유년식 사유를 풀어놓아도 저촉받지 않는 장소인 탓이다. 시인이 산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는가 하면 산이 시인의 마음속으로 들어올 정도로 경계가 없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 지치고 따분해지기 쉬운 사회와는 달리 길을 잃어버리더라도 산에서는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 산을 헤매다 지치면 소나무 뿌리를 베고 눕기도 하고 그러다 뜻하지 않은 복을 얻기도 한다. 복령은 예부터 소나무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땅속에 스며들어 생긴 것이라고 여겼다. 또 복령을 차고 다니면 모든 귀신과 재앙을 물리치는 부적 역할을 한다는 설도 있다.
전래 동화의 기본 모티브는 대부분 '권선징악'의 '인과응보'이다. 그 모티브가 김영진 시인의 동화적 상상력의 힘이 발휘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모든 선행은 용기의 사다리 타고 오"른 다음에야 선행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의식이다. 복령은 소나무의 신령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으로 선행한 자, 좋은 일에 용기를 내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이라고 여긴다.
고생하며 험한 산을 오른 대가로 복령을 얻는 것은 당연하다, 라고 하는 사고와 복령을 얻은 것은 어디까지나 선행이 있고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유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한 사람의 성품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김영진의 생의 철학과 가치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p. 시 116/ 론 132-133) (최광임/ 시인, 두원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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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붉은 수염의 침대에서 자다』에서/ 2022. 1. 10. <리토피아> 펴냄
* 김영진/ 경기 인천 출생, 2017년『리토피아』로 등단, 시집『달 보드레 나르샤』『옳지, 봄』『항아리 속의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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