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집 속의 시

오민석_살 속에 말이 있다*(발췌)/ 노동의 근육 : 백무산

검지 정숙자 2022. 2. 10. 14:23

<2021, 시작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자/ 오민석_대표작> 中

 

    노동의 근육

 

    백무산

 

 

  살 속에 말이 있다

  살은 스스로 말을 한다

  어설픈 이성은 그 말을 막는다

 

  노동의 근육 속에는 말이 있다

  그것은 살과 살의 대화다

  뼈와 살의 대화다

  남의 살과 나의 살의 대화다

 

  살은 창조를 한다

  스스로 세포를 중식하듯이

  스스로 유전인자를 만들듯이

  살은 스스로 음악을 만든다

  살은 속삭이듯 말을 하지만 우리를 지배한다

  어설픈 이성은 독재처럼 살을 지배하려 하지만

  오래 억눌린 살의 말은

  또 다른 피흘림으로 대답한다

     -전문-

 

     * 심사위원: 유성호  홍용희  이형권  임지연

 

  ▶ 살 속에 말이 있다*_몸에 대하여(발췌)_ 오민석/ 시인, 문학평론가

  메를로 퐁티(M. Ponty)에 의하면 주체는 정신이나 의식이 아니라 '몸(body)'이다. 그리하여 퐁티는 "몸-주체(body-subject)"라 부른다. "나는 나의 몸 앞에 있지 않다. 나는 몸 안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몸이다. ···(중략)··· 만일 우리가 여전히 몸의 지각(perception)과 관련하여 해석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몸은 자신을 해석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퐁티 『지각의 현상학』). 퐁티가 몸을 중시하는 것은 지각이 궁극적으로 (퐁티의 용어대로) "감각 덩어리(mass of the sensible)"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몸은 그 자체 주체이므로 "스스로 말을 한다".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어설픈 이성"이다. 이런 점에서 백무산의 위 시는 '살 속의 말'을 옮겨 놓은 것이다. 백무산이 "살"에 집중하는 것은 노동자의 삶이 무엇보다 '몸의 삶'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노동력이 "특수한 상품"인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살과 피" 외에 다른 저장고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백무산은 노동자의 삶을 통해 몸이 언어이며, 의미이며, 주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스로 음악을 만"드는 몸, 즉 몸이 스스로를 해석한다는 퐁티의 주장과 동일한 지점에 도달한다. 퐁티에 의하면 몸은 가시적인(visible) 것이고 살은 비가시적인(invisible) 것이다. 살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사물과 존재의 원료이자 동력이다. 몸은 비가시적인 살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p. 시 145-146/ 론 146-147) 

  

  * 오민석 비평선 『몸-주체와 상처받음의 윤리』 70쪽/ (2020. 11. 천년의시작) 

 

  ----------------

  * 『시작』 2021-겨울(78)호 <시작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자 대표작『몸-주체와 상처받음의 윤리』> 中

  * 오민석/ 충남 공주 출생, 시인이자 평론가, 현재 단국대학교에서 영미인문학과 교수, 1990년 『한길문학』으로 시 부문 &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시집『굿모닝, 에브리원』『그리운 명륜여인숙』『기차는 오늘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등, 문학이론 연구서『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문학연구서『저항의 방식: 현재 캐나다 원주민 문학의 지평』, 대중문화연구서 송해 평전『나는 딴따라다』『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시 해설서『아침 시: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산문집『경계에서의 글쓰기』『개기는 인생도 괜찮다』, 번역서 바스코 포파 시집『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