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들
마경덕
근육을 소비하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소낙비, 근육이 빠진 어느 정치인의 공약처럼 바닥에 뒹군다
몸집을 키운 사내들이 괴물처럼 변해버린 육체를 전시 중이다 전봇대를 붙잡고 버티는 헬스클럽 광고지, 비에 젖은 종이의 근육도 만만치 않다
선거 벽보를 장식하던 노인의 이름에도 근육이 있었다 소나기처럼 찾아온 권력은 자주 뉴스에도 등장했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하늘이 있었다
화폐의 근육으로 터질 것 같은 금고들, 인맥이 촘촘한 저 노인도 화폐 속에 숨은 질긴 실처럼 자신의 전부를 은폐했다
바다의 근육으로 쫄깃한 모둠회가 나오기 전 쓰끼다시로 등장한 흐물흐물한 연두부, 이 빠진 노인 같다 입속에 살던 서슬 푸른 호령은 퇴화하고 혀의 걸음도 어눌한
기억은 누수되고 한도 초과인 노인의 카드에는 근육이 없다
"가만히 있어도 해마다 근육은 감소됩니다" 의사는 그것도 병이라고 했다
하루치 근육을 다 써버린 태양이 서쪽 능선으로 내려앉는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예술의 실효성 차원에서 볼 때 시어는 사회성을 가진다. 이때 시는 개인의 정서와 사상 중에서 사상을 보다 적실하게 반영한다. 전언의 층위에서 시의 목소리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윤리적 올바름에 대한 요청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근육들」처럼 시는 그 요청들을 직접적으로 발화하지 않는다. 시의 사회성은 형식과 내용이 분리 불가능하도록 녹아들고 뒤섞인다. 시적 의미는 이미지의 자장 안에서 내재적으로 발생할 따름이다. 그럼으로써 시는 독자인 수용자가 '근육'이라는 사물을 매개로 당대의 공통 감각을 불편하게 여기는 상태로 육박하게 함으로써 그 실효성을 드높인다. (시 p. 22-23/ 론 148) (신상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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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에서/ 2022. 1. 3. <상상인> 펴냄
* 마경덕/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신발論』『사물의 입』『그녀의 외로움은 B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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