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 꽃 외 1편
윤명규
만삭이던 보름달이
수천 개의 물해파리를 산란하여
하얗게 성벽을 쌓고 있다
금동대향로에 향이 타오르자
흰빛 제의를 입은 제관들이
어깨를 기댄 채 서립하여 제를 지낸다
늘어진 옷고름 끝에 매달린
집채만 한 한 침묵이
밤 뻐꾸기 울음소리에 흔들거리고
생전에 쌓아놓은 죄업들이
무색의 촛농으로 환생하여
삼도천을 가로질러 흘러내린다
해파리 너울대는 눈부신 윤슬
제관들이 두터운 어둠을 음복례 하며
감읍하고 죽은 자의 죄를 사하는 밤
퍼렇게 산발한 혼령들이
향불을 타고 강신하고 있다
우렁우렁 귀신들의 주문 외는 소리
모시옷 춤사위가 음산하게 펄럭이는
이름 모를 망자의 제삿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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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엔
미당 선생님의 生家를 다녀와서
뒤틀린 길길
내려앉은 솜털 구름 위
시 같은 시인의 발자국이 남아있다
질마재 길 황토에
빈천한 소금장수 한숨소리가
훠이훠이 원귀처럼 떠돌아다니고
장수강 뻘 밭에 흰 무명 적삼 아낙이
눈물을 캐내고 있다
곱게 빗어 넘긴 처녀의 단발머리같은 용마람 이엉지붕에
겨울 햇살이 튕겨져 솟아오른다
밤이면 여기 얼마나 많은 별들이 내려앉았다
새벽을 물어 날랐을까
여기서 당신은 거진 빈 술 사발에 피 같은 혼을 섞어 취하시고
내친김에 소요산 골 바람 등을 타고 올라
심오한 시를 토하셨으리라
시인의 마을엔 밀 가마 속
텁텁한
누룩 냄새가 남아 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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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명규/ 2020년『미네르바』로 시 부문 등단
* 시집 『허물의 온기』에서/ 2021. 11. 10. <나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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