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파 꽃 외 1편/ 윤명규

검지 정숙자 2021. 12. 23. 03:31

 

    파 꽃  외 1편

 

    윤명규 

 

 

  만삭이던 보름달이

  수천 개의 물해파리를 산란하여

  하얗게 성벽을 쌓고 있다

 

  금동대향로에 향이 타오르자

  흰빛 제의를 입은 제관들이

  어깨를 기댄 채 서립하여 제를 지낸다

 

  늘어진 옷고름 끝에 매달린

  집채만 한 한 침묵이

  밤 뻐꾸기 울음소리에 흔들거리고

 

  생전에 쌓아놓은 죄업들이

  무색의 촛농으로 환생하여

  삼도천을 가로질러 흘러내린다

 

  해파리 너울대는 눈부신 윤슬

  제관들이 두터운 어둠을 음복례 하며

  감읍하고 죽은 자의 죄를 사하는 밤

  퍼렇게 산발한 혼령들이

  향불을 타고 강신하고 있다

 

  우렁우렁 귀신들의 주문 외는 소리

  모시옷 춤사위가 음산하게 펄럭이는

  이름 모를 망자의 제삿날

      -전문-

 

    ------------------

    시인의 마을엔 

        미당 선생님의 生家를 다녀와서

 

 

  뒤틀린 길길

  내려앉은 솜털 구름 위

  시 같은 시인의 발자국이 남아있다

 

  질마재 길 황토에

  빈천한 소금장수 한숨소리가

  훠이훠이 원귀처럼 떠돌아다니고

  장수강 뻘 밭에 흰 무명 적삼 아낙이

  눈물을 캐내고 있다

 

  곱게 빗어 넘긴 처녀의 단발머리같은 용마람 이엉지붕에

  겨울 햇살이 튕겨져 솟아오른다

  밤이면 여기 얼마나 많은 별들이 내려앉았다

  새벽을 물어 날랐을까

 

  여기서 당신은 거진 빈 술 사발에 피 같은 혼을 섞어 취하시고

  내친김에 소요산 골 바람 등을 타고 올라

  심오한 시를 토하셨으리라

 

  시인의 마을엔 밀 가마 속

  텁텁한

  누룩 냄새가 남아 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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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명규/ 2020년『미네르바』로 시 부문 등단

   * 시집 『허물의 온기』에서/ 2021. 11. 10. <나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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