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허물의 온기/ 윤명규

검지 정숙자 2021. 12. 23. 02:58

 

    허물의 온기

 

    윤명규

 

 

  언제부터일까

  뒤꿈치 터진 양말 한 켤레

  함부로 걸려 있네

 

  고단한 발품으로 찢긴 상처

  후우욱

  구멍으로 빠져나온 한숨이

  가슴속을 파고드네

 

  어느새 흰머리가 돋고

  복숭아뼈 그 자리에

  새겨진 꽃잎 두 쌍

  거친 돌길 걷다걷다

  보풀로 물집이 맺혀 있네

 

  가늘게 떨고 있는 울타리 코끝

  구멍 난 양말 한 켤레

  아내의 고단한 하루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 시에서는 대상을 향해 바라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을 표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보이는 형태에 집중하지 않고 내면의 아픔을 자기분석으로 완성해 가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가늘게 떨고 있는 울타리 코끝/ 구멍난 양말 한 켤레/ 아내의 고단한 하루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아내의 고달픈 삶과 구멍 난 양말에서새어나온 한숨을 시인은 연민 가득한 눈으로, 가슴으로, 보고, 느끼며, 비의적인 의미를 충만하게 구성하고 있다. "고단한 발품으로 찢긴 상처/ 후우 욱/ 구멍으로 빠져나온 한숨이/ 가슴 속을 파고드네" 여기에서 시인은 머리에 흰 서리가 내려앉은 아내의 복숭아뼈 자리에 보풀로 맺힌 물집을 찾아 내기에 이른다. 무릇 시인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을 간직한 사람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것에서 '다른' 모습을 찾아내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줄에 널어져 있는 아내의 헤진 양말짝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물집 하나를 찾아내어 마음으로 아파하고 있다. 쓸쓸하지만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하는 것 같은 이 지점에서 독자는 시인의 내면에서 출렁이는 "경건"의 의미까지 찾아 읽을 수 있는 詩眼을 얻게 된다. (시 p. 42/ 론 156-157) (이채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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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허물의 온기』에서/ 2021. 11. 10. <나인> 펴냄

   * 윤명규/ 2020년『미네르바』로 시 부문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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