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50그램 외 1편/ 이광소

검지 정숙자 2021. 12. 14. 01:54

 

    50그램 외 1편

 

    이광소

 

 

  홍대 앞에서 딸이 자랑하는 식당에 끌려갔다

  김치를 압력솥에 쪄서 내놓는데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식당을 나오면서 상호를 보니 <50그램>이라고 쓰여 있다

  50그램이란 무엇일까, 김치찜의 무게를 가리키는 걸까

  너와 함께한 기쁨의 질량일까 알 수 없다

 

  소년이었을 때

  부모님 몰래 닭장에서 꺼낸 달걀을

  사촌 여동생 친구 손에 쥐여 준 적이 있었다

  내 생애 최초로 설렘이 50그램이었을까

 

  그 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그녀는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었다

  그것은 기억 속에 오래 살아 있어

  객지생활을 하는 내내 나를 끌고 다닌 별이 되었으며

  내가 그녀의 눈빛에서 본 것은

  뢴트겐이 발견한 X선 에너지보다 강한 빛이었다

 

  굽이치는 강물과 폭풍을 예감하며

  가시밭길도 금잔디처럼 밟고 가는 가벼운 길

  

   나는 오늘 딸에게서 50그램의 기쁨을 받고서

  그램은 산화되는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램은 아주 적은 양이라서

  사소한 것에서부터 감사함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램은 진정 무의 흔적이 아니므로

  누구와 함께 나누는 소중한 가치임을!

  깨닫는 순간 갑자기 핸드폰 벨이 울렸다

 

  여보, 딸하고 일찍 들어와 저녁식사하세요

 

  나는 단 한 번 달걀을 주었을 뿐인데

  그녀는 평생, 아니 날마다 나에게

  50그램의 기쁨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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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꼇잠

         부재 · 5

 

 

  당숙은 잠을 자면서도 일을 한다  

  낮에 미처 하지 못한 일이 있는지

  실을 감았다가 풀듯이

  이불을 몸에 돌돌 만 채 방 안을 굴러다닌다

  시골 전답 다 팔아 도시로 떠나더니

  도시 생활 삼 년도 안 되어 전부 탕진한 뒤로

  밤이면 돌꼇잠을 잔다

  수만 평 논을 쟁기질하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땅을 갈아엎기도 하다가

  반대 방향으로 도로 풀어놓는다

  잠은 죽음의 연습이 아니라는 듯

  이마에 식은땀을 흘린다

  십 년도 넘게

  가족이 깊이 잠든 시간에도 쟁기질을 한다

  잠도 삶의 연장이라는 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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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 2021. 9. 30. <시산맥사> 펴냄

 * 이광소/ 1942년 전북 전주 출생, 1965년 문공부 신인예술상 시 부문 수상 & 2017년『미당문학』으로 평론 부문 당선(평론가명_이구한), 시집『약속의 땅, 서울』『모래시계』, 주요 평론 <현대시의 현상과 존재론적 해석>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