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기분, 페르퀸트 모음곡, 그리고
나병춘
이수영
살부드런 아침
양배추와 당근을 채 썰고
푸르른 언어의 소스로 버무린
포도주 빛 시를 추려서 담는다
접시 위
일백오십 그램의 흰 밥알들
알짜배기 근력의 힘
나박김치 속 미나리의 향연
써니싸이드업 에그후라이,
날마다 두 개의 태양을 삼킨다
힘 있는 오늘
강한 내일
우리의 모레, 글피 그 글피-
-전문-
해설> 한 문장: 「아침의 기분, 페르 귄트 모음곡, 그리그」라는 다소 긴 제목의 시이다. 시의 또 다른 표제는 시인 나병춘이다. '아침의 그 느낌', '아침이 지닌 그 상쾌함'이 이 시가 지닌 전반적인 어조이다. 나병춘 시인에 관해서 내가 아는 바는 없다. 다만 '아침이 지닌 그 상쾌함'과 같은 느낌의 인물인 듯하다.
그리고 「페르 귄트 모음곡」이라는 표제와 함께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의 대표곡인 '페르 귄트 모음곡'이 조용히 시의 배음으로 깔리는 듯한 작품이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노르웨이 극작가 입센의 희곡 「페르 귄트」에 곡을 붙인 것으로, 주인공 페르 귄트가 온갖 기행과 어려움을 겪은 후, 옛 애인 솔베이지가 기다리는 산속 오두막집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여인의 품속에서 죽는다는, 「솔베이지의 노래」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노르웨이의 산속 오두막집에서 사랑하는 애인 페르 귄트를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 「솔베이지의 노래」는 슬프고 아련하기도 하지만, 실은 '양배추와 당근을 채 썰고/ 푸르른 언어의 소스로 버무린/ 포도주 빛 시를 추려서 담'은 접시와 같이 싱그럽다. 그런가 하면, '나박김치 속 미나리의 향연'과 같이 풋풋한 향기가 난다. 솔베이지의 페르 귄트를 향한 그 사랑이 다만 애절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장 청순하기 때문이다. 그 청순함으로 인하여 솔베이지의 사랑은 싱그럽고 또 풋풋하기까지 한 것이다. (시 p. 36/ 론 119) (윤석산/ 시인,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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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미르테의 꽃, 슈만』에서 / 2021. 11. 25. <서정시학> 펴냄
* 이수영/ 1952년 서울 출생, 1993년『문예사조』로 등단, 시집『깊은 잠에 빠진 방의 열쇠』『무지개 생명부』『안단테 자동차』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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