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늑대의 시간
이광소
어둠이 내릴 무렵
저기, 마을로 들어오는 것이 개인가 늑대인가
분별할 수 없는 시간
우리는 무엇인가 맞설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던 거리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수십 명이 쓰러질지
아니면 수백 명이 쓰러질지 모른다
한때 사거리 편의점 입구에 모인 사람들
커피를 마신 종이컵들이 쌓였던 때를 기억한다
언젠가 큰 거리에서 내뿜던 최루탄 가스에 쫓겨
골목보다 먼저 쓰러진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살았다
퇴근 후 집으로 일찍 들어가는 길을 잃어버렸으며
우리 함께 연접된 끈을 잃어버렸다
이제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더 이상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해야 할 시간
잃은 것들을 그리워하며 거리를 서성이는 자들은
지금 단호한 행동이 필요하리라
장례차가 급히 지나가고
사거리를 지나간 사람들은 언제 다시 돌아올지
돌아오지 못할지, 알 수 없는 일
주인을 잃은 개 한 마리 어슬렁거린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인에 의하면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불확실한 시간에는 다가오는 불안을 이기기 위해서 "무엇인가 맞설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2연을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순식간에 수십 수백 명이 쓰러질지도 모르는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 3연에서 시인으로 추정되는 화자는 과거 자신이 시위대의 일원으로 참여했다가 최루탄 가스를 마시고 골목에서 쓰러졌던 경험을 말하면서, 그때 잃어버린 것들을 나열하고 있다. 그때 화자는 "퇴근 후 집으로 일찍 들어가는 길"과 화자를 비롯한 친구들이 가지고 있던 '연접의 끈'을 잃어버렸다. 고립은 코로나 시대가 가져다 준 대표적인 삶의 변화이다. 화자는 이러한 위기 상황이 지속되면 소중한 것들을 더 많이 잃게 되라라는 것을 예견하면서 먼저 자신을 돌아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상황에 우리 자신의 실존을 비추어보면 우리는 모두 '주인 잃은 개 한 마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시 p. 20-21/ 론 118-119) (박남희/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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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 2021. 9. 30. <시산맥사> 펴냄
* 이광소/ 1942년 전북 전주 출생, 1965년 문공부 신인예술상 시 부문 당선, 2017년『미당문학』으로 평론 부문 당선(평론가명_이구한), 시집『약속의 땅, 서울』『모래시계』, 주요 평론 <현대시의 현상과 존재론적 해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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