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변항 외 1편
임동윤
이곳 사람들,
가슴에 배 한 척 띄우고 산다
젖은 어제를 말리는 해가 뜨면
괭이갈매기는 만선의 돛대 끝에서 펄럭이고
금박의 햇살 한 줌 물고 수평선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
파랑새 날갯짓보다 가볍고 경쾌하다
페넬로페의 그물을 던지며 살아가는 하루하루
저녁이면 해진 무릎을 꿇고
거친 해일 속에서도 작은 등불 몇 개 내건다
저들, 정박할 부두는어디인가
빛의 음계 따라 생의 질긴 밧줄을 풀며
떠나는 사람들,
뱃고동 소리가 반 박자 느리게 울려올 때면
날마다 새로 쓰는 내력을 바닷물에 헹구며
햇살과 잔물결의 하루를 맛깔나게 버무린다
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저울질하며
멀고 재빠르게,
물떼새의 휘어진 등처럼
이곳 사람들,
가슴에 눈물 한 척 띄우고 산다
-전문-
----------------------
나무를 위한 변명
가지 하나 키우기 위해
캄캄한 물길을 더듬어가는 뿌리
연둣빛을 켜 든 가지의 힘은
뿌리가 길어 올리는 소슬한 사랑
가지와 뿌리는 나무의 전 생애다
서로 만날 수 없는 거리에서
가지는 제 머리에 뜨는 별을 모으고
뿌리는 이 밤에도 가지 끝으로
하늘 같은 등불 하나 올려보낸다
보아라,
뿌리 없는 집은 허물어진다
뿌리는 나무의 기둥
가지는 나무의 등불
서로 보듬는 그리움으로
나무는 오늘 더욱 단단해진다
-전문-
--------------------------------
* 시집 『나무를 위한 변명』에서 / 2021. 11. 25. <소금북> 펴냄
* 임동윤/ 1948년 경북 울진 출생-춘천에서 성장, 196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 1992년 ⟪문화일보⟫ ⟪경인일보⟫ 시조 부문 & 1996년 ⟪한국일보⟫에 시 부문 당선, 시집『함박나무 가지에 걸린 봄날』『아가리』『풀과 꽃과 나무와 그리고, 숨소리』등 다수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이프라이터, 앤더슨 외 1편/ 이수영 (0) | 2021.12.14 |
---|---|
아침의 기분, 페르퀸트 모음곡, 그리고/ 이수영 (0) | 2021.12.14 |
현몽(現夢)/ 임동윤 (0) | 2021.12.12 |
비를 줍다 외 1편/ 김해빈 (0) | 2021.12.12 |
열아홉 번째 응접실을 나오며/ 김해빈 (0) | 2021.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