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죽변항 외 1편/ 임동윤

검지 정숙자 2021. 12. 12. 23:43

 

    죽변항 외 1편

 

    임동윤

 

 

  이곳 사람들,

  가슴에 배 한 척 띄우고 산다

  젖은 어제를 말리는 해가 뜨면

  괭이갈매기는 만선의 돛대 끝에서 펄럭이고

  금박의 햇살 한 줌 물고 수평선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들,

  파랑새 날갯짓보다 가볍고 경쾌하다

  페넬로페의 그물을 던지며 살아가는 하루하루

  저녁이면 해진 무릎을 꿇고

  거친 해일 속에서도 작은 등불 몇 개 내건다

  저들, 정박할 부두는어디인가

  빛의 음계 따라 생의 질긴 밧줄을 풀며

  떠나는 사람들,

  뱃고동 소리가 반 박자 느리게 울려올 때면

  날마다 새로 쓰는 내력을 바닷물에 헹구며

  햇살과 잔물결의 하루를 맛깔나게 버무린다

  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저울질하며

  멀고 재빠르게,

  물떼새의 휘어진 등처럼

  이곳 사람들,

  가슴에 눈물 한 척 띄우고 산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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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를 위한 변명

 

 

  가지 하나 키우기 위해

  캄캄한 물길을 더듬어가는 뿌리

 

  연둣빛을 켜 든 가지의 힘은

  뿌리가 길어 올리는 소슬한 사랑 

  가지와 뿌리는 나무의 전 생애다

 

  서로 만날 수 없는 거리에서

  가지는 제 머리에 뜨는 별을 모으고

  뿌리는 이 밤에도 가지 끝으로

  하늘 같은 등불 하나 올려보낸다

 

  보아라,

  뿌리 없는 집은 허물어진다

  뿌리는 나무의 기둥

  가지는 나무의 등불

 

  서로 보듬는 그리움으로

  나무는 오늘 더욱 단단해진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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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나무를 위한 변명』에서 / 2021. 11. 25. <소금북> 펴냄

 * 임동윤/ 1948년 경북 울진 출생-춘천에서 성장, 196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 1992년 ⟪문화일보⟫ ⟪경인일보⟫ 시조 부문 & 1996년 ⟪한국일보⟫에 시 부문 당선, 시집『함박나무 가지에 걸린 봄날』『아가리』『풀과 꽃과 나무와 그리고, 숨소리』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