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품에 남은 나의 시

가거도/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21. 12. 5. 02:55

 

    가거도

 

    정숙자

 

 

  one: 서 있어서 섬이겠지요. 파도에 폭풍우에도 끄떡없이 서 있어서 섬이겠지요. 천 날 만 날 물을 먹고도 흐무러지기는커녕 직각으로 서 있어서 섬이겠지요. two: 바다가 제아무리 깊다고 한들 섬보다야 깊을 수 없죠. 섬의 뿌리는 바다  바닥에서 시작인 걸요. 게다가 섬의 뿌리는 지금도 자라고 있죠. 섬의 뿌리는 옆으로 사선으로도 뻗어 먼 섬들과 교신도 하죠. 태풍의 눈쯤이야 미리미리 알 수 있고요. 물 더미를 깨트리는 섬의 능력은 하루 이틀에 익힌 재주 아니죠. three: (그녀는 스킨스쿠버) 뭐 좀 물어볼까? 멋진 섬 좀 알려 줄래? 제일로 멋진 섬 하나만 알려 줄래? four: (가거도? '사람이 거할 만하다'는 뜻?!) 버스 한 대가 비탈진 둘레를·······바람 많이 불고 바다 밑 아름답고·······"거기서 살고 싶었어요." 후박나무 많고 발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공기가 정말 눈부시고·······선착장에서 올라가면 바로 집·······깎아지른 경사 위에 작은 집 어부의 집·······물빛 시꺼먼데 배가 지나가면 옥빛·······"언제라도 거기 가서 살고 싶어요." 목포에서 4시간 30분 가량. five: (섬) 셀 수 없는 물결 가운데 한 물결이 우뚝 멈춰 서 있네. 셀 수 없는 물결 가운데 한 물결이 우뚝 멈춰 서 있네. six: (산) 멈춰 선 물결이 하나일 땐 섬, 여럿이면 산, 백을 헤아리면 출렁출렁 짙푸른 산맥. seven: (빼어난 산일지라도) 어느 날 문득 흐르면 물결이라네. 오늘 물결이라도 어느 날 우뚝 멈춰서면 섬이    산이 된다네. 너도(너) 나도(나) 우리도(우리) 부지불식간 가거도라네. 

   -전문-

 

  가거도 |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 可佳島'로 불리다가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의 '가거도可居島'로 불리게 되었다. 일제가 소흑산도라고 명칭을 바꾼 영향이 아직 남아 소흑산도로 불리기도 한다. 가거도 패총이 지방기념물로, 멸치잡이노래가 지방 무형문화재로, 희귀조류인 구굴도 해조류(뿔쇠오리, 바다제비, 슴새) 번식지가 천연기념물 제341호로 지정되어 있다. (p. 시-론/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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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영 외 『내가 사랑하는 섬』 2010. 3. 15. <좋은책터 굿글로벌> 펴냄

  * 정숙자/ 1988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