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단 창설 제38주년 기념 축시
정숙자
그대 나이
서른여덟이라기
내 마음에
서른여덟 개 촛불 밝히었네
7천만 우리 겨레 가운데
어느 한 사람
3 · 8이란 숫자
가슴에 못 박히지 아니했으랴
부모님 시신을 묻지도 못한 채
월남 길에 올랐던 소년이
지천명을 넘긴 오늘에 이르기까지
6군단이여, 그대는
중부전선
왕방산 기슭을
통일 염원으로 지켜왔구나
강 건너 떠나보낸
아들 딸 그리워
부모의 영혼인들
밤 새워 울지 아니했으랴
독일 · 구소련보다도
3 · 8선 저쪽
우리의 부모형제가 더 빨리
자유를 찾았어야 했을 것을
그러나 6군단이여
그대 나이 서른여덟 되도록
일순간도 잠자지 않고 바친
애국 일념이
독일 · 구소련에 먼저 가 닿았음이라
나는 믿었네
이제 우리 차례
3 · 8선의 또 다른 이름 휴전선은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를 말한다는 걸
다시금 인식하고
각오해야 할
오늘은 그대의 뜻깊은 생일
38회
7천만 우리 겨레 가운데
어느 한 사람
3 · 8이란 숫자
가슴에 못 박히지 아니했으랴
그 여러 해 중에
꼭이 올해
우리가 만났음은
역사적 필연과 책임의 확인
민주수호, 6군단이여
오늘 높이 든 나의 축배는
그대에 대한 신뢰와 기대
존경과 애정으로 가득 채웠네.
- 전문, 1992. 5. 1. 소아 정숙자
회고> 어느새 29년이 되었다니, 남편 재직시 군단장님 요청으로 기념 축시를 지어 애국가 바로 다음 순서에 낭독했던 기억이 어젯일만 같다. 액자 유리를 닦다가 사진 뒤에 넣어둔 이 궁서체의 묵적을 발견하고는 만감이 교차한다. 말 그대로 <내 품에 남은 나의 시>가 되었다. 29년, 그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故 최경근 장군님, 필자의 지아비 故 정영길 대령, 그리고 그날 6군단 연병장에서 함께 애국가를 불렀던 지역 주민과 전 부대원들······ 어느 하늘 아래 계시더라도 부디 평안하시기를. 고인이 되신 분께는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빌고 또 비는 이 밤······ 어디선가 강둑 하나 툭 무너져······ 쏟아지는 물소리가 적막을 가로지른다.
---------------------
* 정숙자: 검지劍智 이전, 당시에는 소아小雅라는 아호를 썼다.
'내 품에 남은 나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兵士 예찬/ 정숙자 (0) | 2022.10.21 |
---|---|
가거도/ 정숙자 (0) | 2021.12.05 |
춘추전국시대/ 정숙자 (2) | 2021.05.08 |
좌우명/ 정숙자 (0) | 2021.05.08 |
무저항주의자의 날개/ 정숙자 (0) | 2021.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