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 잃는 시대에
장호병/ 수필가
군주가 잡들어 있는 무덤을 능陵, 발굴하여도 무덤 속 주인공을 알 수 없으면 총塚이라 한다. 임금의 무덤이 아님에도 능으로, 무덤의 주인공을 알고 있음에도 총이라 회자되는 곳이 있다.
그 첫째가 경북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 광릉廣陵과 연아총燕娥塚이다.
광릉은 경기도 광주이씨 시조공 이당李唐의 묘를 이른다. 시조 묘가 경북에 있는 것도, 광릉이라 불리는 것도, 그 위쪽에 천곡泉谷 최원도崔元道의 어머니 정부인 영천이씨의 묘가 자리한 것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고려 말 신돈辛旽의 전횡으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천곡은 고향 영천으로 낙향하였다. 둔촌遁村 이집李集은 신돈을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연로한 아버지를 업고 밤중 산길을 택하여 간신히 과거 동기인 천곡의 집에 당도하였다. 천곡의 생일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누굴 망치려고 이곳까지 찾아왔단 말인가!" 천곡이 대노하여 이들을 내쫓고, 역적들이 걸터앉았던 자리라면서 바깥채 툇마루를 불질러 버렸다. 천곡의 진심이 아닐 거라 생각한 그들은 멀지 않은 길옆 덤불 속에 몸을 숨겼다. 사람들이 돌아가자 천곡은 밤늦게 둔촌 부자를 찾아내어 자신의 다락방에 숨겼다. 식욕이 왕성해졌다면서 나날이 큰 그릇에 고봉으로 밥을 담게 하여 나누어 먹었다. 이상히 여긴 여종 제비가 문구멍으로 몰래 들여다 보였다.이 사실은 부인에게 전달되었고, 마침내 천곡의 귀에 들어갔다. 천곡의 함구령에, 발설을 염려한 부인은 문지방에 혀를 얹고 문을 닫아 스스로 벙어리가 되었고, 제비는 비밀을 지키려고 자결하였다. 이듬해 둔촌의 부친 이당이 별세하자 천곡은 자신의 수의를 내주고, 어머니 산소 아래 자신이 묻힐 묘자리에 장사지냈다.
이당의 후손들은 지금도 시조 묘제 때 천곡의 모친 영친이씨 묘에서는 물론 양 집안의 멸문지화를 자결로 막아낸 제비의 무덤 연아총에서 같이 제사를 올린다. 소나무 군락 사이로 폭 100여 미터, 묘지 상단에 이르는 200여 미터의 드넓은 이 지역은 누가 봐도 조선 8대 명당임을 부인할 수 없다. 광주이씨는 문과 급제자 188명, 상신 5명, 대제학 2명 등을 배출한 조선 최고의 벌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을 비롯하여 최근 총리를 지낸 이수성 또한 이당의 후손이다. 두 사람의 문경지교刎頸之交는 일제강점기 교과서에는 '진우'로, 2001년부터는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교과서 『생활의 길잡이』에도 실려 있다.
그 두 번째는 영천시 자영면 성곡리 시총詩塚이다.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 선생과 그의 맏아들 백암柏巖 정의번鄭宜藩 부자는 임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게 점령되었던 영천성을 탈환하였다. 전열을 가다듬어 경주성 탈환작전을 펼친 정세아 의병장을 비롯한 영천 의병들은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전투는 점점 더 불리하게 전개되었고, 백암에겐 적진에 포위된 아버지를 구해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백암은 종 억수에게 나중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서라도 몸을 숨겨 목숨을 부지할 것을 명했으나, 억수는 주인과 종 사이의 의리도 군신간, 부자간의 의리와 다르지 않다면서 주인을 뒤따랐다. 그들은 포위망을 뚫고 전장을 휘저었으나 중과부적으로 장렬하게 최후를 맞았다. 전쟁이 끝난 후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을 찾기 위해 경주성으로 갔으나 허사였다. 화살촉으로 초혼하여 시신 대신 평소의 의관과 유품, 충효를 노래한 지인들의 시문으로 장례를 치렀다. 무덤 앞에 '증통정대부승정원 좌승지겸경연참찬관백암정공시총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柏巖鄭公詩塚이라 새긴 화강석비를 세웠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시로 만든 무덤, 시총이다.
그 아래에는 충노 억수의 무덤이 있다. 친구를 위하여 나를 희생하는 일도, 충비나 충노처럼 목숨을 내놓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덕을 실천한 충노, 충비 그들은 사후 수백 년 세월에도 양반들로부터 기림을 받고 있다.
문학도 삶도 덕을 구하는 일이다. 이미 그 길을 열고, 실천해 온 이들을 주목하니 발걸음이 가볍다. 새로운 길을 찾는 것도, 길을 잃어버리는 것도 길 위에서다. 나보다 몇 갑절이나 오랜 세월을 버텼을 노송들이 '그대ㅡ 바른 길을 걷고 있나?' 묻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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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집 · 서울』 2021-7월(238)호 <글감이 있는 그곳 80>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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