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화가의 끈끈한 우정을 그리워하며
윤범모/ 시인,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재당도 초시도 문장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돈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장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백석의 「모닥불」 일부, 시인은 평등사회를 노래하고 있다. 나그네도 주인도, 붓장사도 땜장이도, 심지어 큰 개나 강아지도, 함께 모여 모닥불을 쪼이고 있는 풍경이다. 공동체 정신은 고귀하다. 백석은 북방 혹은 농촌 정서의 문학세계로 유명하다. 현역 시인 대상으로 '최고의 매력적인 시인'으로 뽑을 때, 단연 1등은 백석이었다. 연구논문 숫자만 보아도 백석은 정지용, 서정주, 김수영, 김소월보다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했다. 학위논문만 해도 320편을 넘은 지 오래되었다. 정말 한국문학사에서 백석과 같은 시인이 있어 행복하다는 말, 예사스럽지 않다. 그런 백석의 작품을 보면 털털한 성품일 것 같은데, 실제의 사생활은 정반대였다.
"조각처럼 멋있는 미남이었다. 광화문 거리를 걸으면 길이 훤해졌다. 그는 결백증의 화신이었다. 문을 열 때도 문고리를 손수건으로 감싸고 잡았다. 수시로 손을 닦았고 청결의 생활화는 그의 습관이었다."
백석의 결벽증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모더니스트요, 미남이었지만 결벽증의 환자, 문고리조차 맨손으로 만지지 않을 정도였다. 시인의 결벽증에 대하여 나는 월북 화가 정현웅의 부인 남궁 요안나로부터 직접 들은 바 있다. 정현웅 부부는 1940년경 뚝섬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백석과 정현웅은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고, 뚝섬 신흥 주택가의 이웃으로 살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이들의 우정은 예술세계로 이어졌다. 백석이 저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발표할 때, 잡지(『여성』 1938월 3일)의 그림은 정현웅이 그렸다, 이 시화 작품은 지금 봐도 좋다. 친구를 뚝섬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게 한 백석은 이내 만주로 떠났다. 이국에서 백석은 「북방에서-정현웅에게」라는 시를 썼다. 백석이 특정인을 위해 쓴 유일한 헌시獻詩다. 백석의 프로필을 조상彫像과 같다고 인물평을 한 정현웅. 이들의 우정과 예술은 고귀하다.
나는 이 자리에서 왜 백석과 정현웅의 우정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얼마 전, 인기 절찬리에 마무리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이 전시의 여운이 아직 가득 남아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래전 문학잡지에 연재했다가 최근 발간한 졸저 『시인과 화가』를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일까. 이상과 구본웅, 정지용과 정종여, 김용준 · 이태준 · 김광섭과 김한기, 구상과 이중섭, 오상순과 하인두, 박완서와 박수근 등등. 문학과 미술의 끈끈한 관계는 시대를 넘어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정말 일상생활에서 실천한 시화일률詩畫一律이었다. 문학과 미술은 한몸이었다. 동북아시아의 빛나는 전통 가운데 하나, 바로 시서화 삼절三絶사상, 유교문화의 조선시대는 직업적 예술활동을 폄하했지만, 삼절사상만큼은 높게 평가했다.
이름도 좋은 전문가 시대여서 그런지 모든 분야가 날로 세분화되고 있다. 유별나게 한국사회는 '장르 장벽'이 높다. 장르 순수주의라고나 해야 할까. 타 전공 분야를 건드리면 마치 영역 침범이라도 한 것처럼 사시斜視로 본다. 하나만 잘하라. 격려의 뜻이면 물론 좋을 수 있다. 문제는 작품 수준이라고 본다. 형식보다 내용이 우선 아닐까. 지나칠 정도의 형식주의 문화풍토는 우리를 답답하게 한다.
나는 이 자리에서 왜 이런 말을 하고 있을까. 한마디로 옛날이 그립다는 것. 즉, 시인과 화가들끼리 친하게 놀던 시절이 그립다는 것. 사회가 발달되었다고 우기면서 왜 시인과 화가는 남남으로 등지고 살까. 미술관의 문학 전시를 보면서 나는 정말 부러웠다. 명작 뒤에 스며 있는 시인과 화가의 끈끈한 관계가, 그 드높은 우정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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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집 · 서울』 2021-7월(238)호 <문학의 향기>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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