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발자국
정숙자
나무만큼만 서있다 가자
나무만큼만 그림자 뉘었다 가자
나무만큼만 가지 뻗고 열매 맺고 새 소리 품었다 가자
나무만큼만 태양 우러러 이슬방울 서 말 닷 말 쏘아 올리다 가자
나무만큼만 이 세상을 마시고 이 세상에게 산소 먹이다 가자
나무만큼만 바람에게 말 걸다 가자
프랑스를 바이칼호수를 타클라마칸을 이태리를 이집트를
밟아보지 못함은 나무 탓 아니므로
항하사의 지느러미와 무량대수 깃털을 지녔으나
제자리 서서 바라볼 수밖에 없음은 나무 탓 아니므로
나무만큼만, 무엇이든 나무만큼만 그렇게 힘껏 푸르게 붉게
하루를 살면 이틀이 채워지는
이틀을 살면 사흘이 깊어지는
언덕 위 나무만큼만 훨훨훨 버리고 가자
나무만큼만 별빛을 모으다 가자
나무만큼만 새아침 깨우고 가자
나무만큼만, 나무만큼만 둥근 기둥의 나무만큼만
*『미네르바』2012-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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