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제가 읽을 한 권의 책을
제 몸에 지니고 태어난다
정숙자
침을 달면 꿀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부리를 달면 곤충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발톱을 달면
토끼 다람쥐 놀릴 수 있을 것이다. 이빨을 달면 사슴 코끼리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갈라
진 혓바닥을 달면 천하무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귀갑(龜甲)을 달면 천년을 살 수도 있
을 것이다.
원한다면
간절히 원한다면
신은 그것을 줄 것이다
그렇지만…, 아니다
애벌레가 아니었다면 제 몸속 높은 산들을 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 쌓았다 헐었다 파도 끝
에서 날개 한 벌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팔 랑 팔 랑 책장 넘기며 풀꽃을 도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운명을 사랑하는 자만이 운명으로부터 사랑 받는다’ 하늘경전 읽을 수도 없었을 것
이다.
*『월간문학』 2012. 5월(5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