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근작시

나비는 제가 읽을 한 권의 책을 제 몸에 지니고 태어난다

검지 정숙자 2012. 5. 12. 11:57

 

  나비는 제가 읽을 한 권의 책을

  제 몸에 지니고 태어난다

 

    정숙자

 

 

  침을 달면 꿀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부리를 달면 곤충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발톱을 달면

토끼 다람쥐 놀릴 수 있을 것이다. 이빨을 달면 사슴 코끼리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갈라

진 혓바닥을 달면 천하무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귀갑(龜甲)을 달면 천년을 살 수도 있

을 것이다.

 

  원한다면

  간절히 원한다면

  신은 그것을 줄 것이다

 

  그렇지만…, 아니다

 

  애벌레가 아니었다면 제 몸속 높은 산들을 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 쌓았다 헐었다 파도 끝

에서 날개 한 벌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팔 랑 팔 랑 책장 넘기며 풀꽃을 도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운명을 사랑하는 자만이 운명으로부터 사랑 받는다’ 하늘경전 읽을 수도 없었을 것

이다.

 

 

  *『월간문학』 2012. 5월(5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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