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차성환_무기교의 기교와 서정의 저력(발췌)/ 먼 저편 : 최서림

검지 정숙자 2021. 7. 13. 03:36

 

    먼 저편

 

    최서림

 

 

  홀쭉한 배낭에다 손으로 베낀 시집을 넣고

  안데스를 걸어서 넘는 체게바라처럼,

  먼 저편이 있는 사람은

  길에서도 지치지 않는다.

  체에게 먼 저편은 눈 덮인 안데스 너머가 아니다.

  악어 떼, 피라냐 우글거리는 아마존 건너가 아니다.

  꿈꾸는 자에게 먼 저편은

  꽁꽁 숨겨둔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있다.

  마음속의 먼 저편이 창공의 별이 되어

  사막 너머 숲속으로 이어지는

  좁고 가늘고 울퉁불퉁한 길로 인도한다.

  모래알 같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 물기가 서리고

  잉카이 꽃 알스트로메리아가 뿌리를 내린다.

  네루다처럼 몽롱하게 목을 빼 올리고

  본향을 향해 길게 꽃을 피운다.

      -전문-

 

  무기교의 기교와 서정의 저력_최서림 편(발췌) _차성환/ 시인

  '체게바라'는 배낭에 "손으로 베낀 시집"을 넣고 혁명을 이루기 위해 "안데스를 걸어서 넘는"다. 인민이 해방된 이상향의 나라인 "먼 저편"을 꿈꾸는 '체게바라'는 시인에 다름 아니다. "먼 저편"을 믿는 사람은 거칠고 험한 세상의 "길에서도 지치지 않는다." "먼 저편"은 '이서국'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나라이다. "눈 덮인 안데스 너머"에도 없고 "악어 떼, 피라냐 우굴거리는 아마존 건너"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마음속에"서 "먼 저편"을 꿈꾸는 자만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먼 저편"으로 가는 길은 불가능해 보이고 "좁고 가늘고 울퉁불퉁한" 슬픔의 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모래알같이 삭막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물기"가 생기게 하고 우리를 결국엔 "사막 너머 숲속으로" 이끈다. "먼 저편"은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가는 나침반"(「마이욜」)을 한 손에 꼭 쥐고 함차게 발을 구르게 한다. "먼 저편"의 도래를 꿈꾸는 자는 "알스트로메리아"라는 생명이 "뿌리"를 내리고 희망의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본다. 본향에 돌아갈 것을 꿈꾸는 네루다처럼, '이서국'에 들어가고자 하는 시인처럼 "알스트로메리아"는 "목을 빼 올리고" "먼 저편"을 "향해 길게 꽃을 피"우는 것이다. 꽃이 한두 송이 피어나고 나무와 새가 들면 이곳은 곧 말의 숲, 시의 숲이 된다. (p. 시 25-26/ 론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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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당문학』 2021. 하반기(12)호 <특집 1>에서

  * 차성환/ 2015년『시작』으로 등단, 시집『오늘은 오른손을 잃었다』, 연구서『멜랑콜리와 애도의 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