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를 목까지 채우고서
임승유
그 사람을 생각했다. 그 사람이 나에 대해 뭐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다음부터다. 누구든 다른 사람에 대해 뭐라고 할 수 있으니
나는 넘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쇳조각 같은 걸 주워서 바닥을 긁다가 그 날카롭고 소름 끼치는 사운드가 이어지는 게 싫어서 벌떡 일어나 저기 흰 벽을 두루고 서 있는 건물까지, 거의 노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해가 넘어갈 때까지 넘어간다.
하나둘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저 위에서부터 어둠을 끌어내리듯 걸어오면, 가만가만 목덜미를 쓰다듬는 것 같다. 나는 거의 목이 없는데. 그래서 단추를 푸는 게 더 나았지. 내가 내린 판단이 언제나 옳은 건 아니지만 얼굴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는
그 사람의 이름은 잊히지 않는다. 이름이 보일 때마다 깊은 관심을 갖는다. 쇳조각의 감촉이 되살아날 때마다 주머니를 뒤적인다.
아 이런 전개는······· 의도한 게 아니지만 진심 같고, 하지만 진심은 무엇이란 말인가. 진심으로 인해 어두컴컴한 주머니 속을 돌아다니느니
내 손에 아직 쇳조각이 있다는 걸 깨닫고는 얼른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래도 미진하면,
양손이 있다는 것.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들어올려
한 손으로는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묶는 것. 이 정도는 해야
넘어가도 넘어가는 게 된다.
-전문, 『현대문학』, 5월호
▶ 시의 쓰임과 효용(발췌) _김정빈/ 문학평론가
나에 대한 악담을 건너들었을 때 엄습하는 불안감은 누구나 아는 감정이다. 불안감은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부른다. 누군가 나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했을 때, 나의 결정과 행동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스스로를 돌아보기 마련이다. 돌이켜볼 것도 없이 "내가 내린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바로 그 확신이 없기에 불안하다.
이 불안과 긴장은 너무 잘 알려진 감정이다. '그 사람'에 대해 곱씹으면서 소름 끼치는 "쇳조각의 감촉"을 계속 되살리는 행위는 너무 날 것의 감정을 일으킨다. 누구나 척 보면 단박에 이해할만한 있는 그대로의 감정이다. 날 것의 감정을 조금 더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을 법한데 시에서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누군가 뒤에서 나에 대해 말한 것을 들어서, 기분이 나빴다든가 화가 난다든가 찝찝했다던가 하는 등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적지 않고 오히려 진심 같지 않도록 감정과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감정 이후의 단계에 대해 고찰이 시작된다. 화자는 손에 있는 쇳조각을 "얼른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마음을 숨긴 후,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머리를 묶는다. 부정적인 마음은 우선 내려놓은 후 한 손이 아닌 양손으로 부지런히 일을 하는 것. 이것이 화자가 찾은 감정을 다스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방법이다.
누구는 깊이 생각하여 차근차근 다듬어가는 것이 시라고 하고, 누군가는 번뜩이는 단상을 일필휘지로 적어야 시라고 한다. 여러 번 생각해서 그 의미를 알 수 있어야 명작인 것처럼 말하다가도, 읽자마자 바로 와닿는 문장이 좋은 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첫인상이 어떻든지간에, 곱씹게 되는 것이 시다. 첫인상이 강렬해서 계속 생각날 수도 있고, 첫인상이 밋밋하더라도 다시 돌이켜보게 될 수도 있다. 곱씹는다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시의 향유란, 시인의 관점으로 편집된 이야기를 자신의 세상으로 들이면서, 삶에 대해 다시 탐구하고 고민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시각을 넓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때 시에서의 균열과 왜곡은 물음표가 되어 독자가 고민하도록 만드는 단서가 된다. (p. 시 232-233/ 론 242-243)
---------------------
* 『현대시』 2021. 6월(378)호 <현대시작품상 추천작을 읽고>에서
* 김정빈/ 문학평론가, 202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메밀꽃 필 무렵/ 송찬호 (0) | 2021.07.13 |
|---|---|
| 차성환_무기교의 기교와 서정의 저력(발췌)/ 먼 저편 : 최서림 (0) | 2021.07.13 |
| 김정현_이런 '고유성'은 또한...(발췌)/ 말보단 시간이 많았던 허수아비 : 이원하 (0) | 2021.07.10 |
| 김형영 스테파노의 초/ 손택수 (0) | 2021.07.09 |
| 고길순 이야기/ 송희복 (0) | 2021.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