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단 시간이 많았던 허수아비
이원하
죽은 나무를 구해다 마당에 심었어요
죽은 목숨이지만 발전이 있어 보였거든요
죽은 나무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하늘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않았어요
덕분에 나는 죽은 나무를 보며
매일 안심할 수 있었어요
대화를 위해 죽은 나무 위에
공을 매달았더니 생명이 됐어요
그걸 허수아비라고 부르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내게도 친구가 생겨서
촛불을 켜고 축하하다가
그만
허수아비의 몸에 불이 붙어버렸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허수아비는 그때 한마디했어요
이제야 말이 더듬더듬 나온다고
-전문-
▶ 이런 '고유성'은 또한 어떠할까/ 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에 관하여(발췌) _김정현/ 문학평론가
"죽은 나무를 보며 매일 안심할 수 있"는 시인의 자기표명은 어떠한 점에서 이 죽은 나무와 나를 분리할 수 없게 한다. "드디어 내게도 친구가 생"겼다는 언급도 그러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고통과 이 '죽은 나무'를 동질적으로 인식한다. 앞서 살펴본 자연과의 분리처럼 시인이자 "죽은 나무는 절대/ 그 누구에게도, 하늘에게도/ 먼저 다가가지 않"는 존재로 비춰진다. '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또 다른) 나인 무엇,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미세한 차이가 있다. '죽은' 허수아비가 지닌 희미하지만 "발전"(「제주에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하게 될 잠재적 기능성으로서.
그 사소한 '차이'를 발견하기가 시인이 밤과 고통의 영역으로부터 또 다른 나를 왜 '감각'하는가의 근본적 이유가 된다. '공을 매달았더니 생명이 된' 이 허수아비는 또한 나의 '실수'로 온몸에 불이 붙게 되지만, 바로 그 고통을 통해서 비로소 '더듬더듬 말을 할 수 있게' 되기에. 마치 「눈동자 하나 없는 섬을 걸었다」에서처럼 자신의 육체가 붕괴되는 고통과 동일한 것이자 자기 자신의 죽음이라 해야 할 행위. 즉 이 '자살'의 장면은 실수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이는 "생각으로는 어찌 될 수 없는 일"(「싹부터 시작한 집이어야 살다가 멍도 들겠지요」)이자 자신의 내면 그 속에 새겨진 무의식적 욕망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지 않을까.
요컨대 죽음과 고통의 시간이자 밤의 시간을 견뎌낸 자만이 무언가를 '더듬더듬' 말할 수 있다는 것. 그 "불"같이 생성될 강렬한, "발전"될 가능성. 이를 위한 '밤'의 영역인 것. "어두운 건 밤의 장점이에요"라고 차분히 말해지는 시 구절의 배경이 "지붕이 날아갈 정도의 바람이 불"(「깊은 맛이라는 개념은 얕은 물에만 있는 것 같아요」)고 있는 시간이라는 점은 위 측면에서 유의미하다. 우리는 시인의 말들 속에 존재하는 어떤 강렬한 마음들을 이해해야 한다. 죽음으로부터 "발전"될 그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낮과 빛의 시간이 아닌, 밤과 어둠 그리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찾으려 하는 마음을. (p. 시 143-144/ 론 14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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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1. 6월(378)호 <기획성 / 페미니즘 시의 경향과 진단 3>에서
* 김정현/ 문학평론가, 201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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