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형영 스테파노의 초/ 손택수

검지 정숙자 2021. 7. 9. 02:24

 

    김형영 스테파노의 초

 

    손택수

 

 

  고백하자면, 나도 유치장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얼떨결에 떠맡은 회사의 주주들에게 고발당해서

  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밤마다 뱀이 목을 졸라대는 악몽의 시간들  

  그때 기꺼이 대부가 되어준 스테파노를 만났다

  영세식 날 받은 초 한 자루가 다할 때 나의 삶도 끝나는 거라고

  사물 하나에도 그리 생명을 불어넣으며 기도를 해보라고 

  스테파노는 엄지와 검지에 침을 묻혀 심지를 껐다

  입으로  불어 끄지 않고 굳이 심지에 체액을 묻혔다.

  영세를 받고 냉담자로 지낸 몇 해

  기도도 미사도 습관이고 중독만 같아서,

  차라리 죄를 짓고 괴로워하는 일이 더 나다운 것만 같아서

  처음 길이로부터 큰 차이 없이 장수를 하고 있는 초

  한 뼘 가웃한 그 길이대로라면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는데

  어쩌다 용기를 낸 날이면

  식은땀을 흘리며 겁먹은 내 낯짝이 보인다

  기껏 한 자루 초에 지나지 않는 것이,

  겨우 제 품이나 밝히는 가난한 빛의 평수가

  심지에 묻은 스테파노의 말 앞으로 나를 데려간다

  전화를 드리면 들려오던 아베마리아

  꺼질듯이 타오르는 저 심장 박동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어져버린 것인지, 혀가 뚝뚝 불땀을 흘린다.

  창밖으로 밀어낸 어둠을 바짝 당겨 살아나는 초

     -전문-

 

   ※ 제목 끝에 [▼] 표시가 된 작품은 시인들이 직접 뽑은 1-2년 내의 근작 대표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시작품상 후보작으로 검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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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1-6월(제378)호 <신작특집>에서

  * 손택수/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