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영 스테파노의 초▼
손택수
고백하자면, 나도 유치장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얼떨결에 떠맡은 회사의 주주들에게 고발당해서
마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밤마다 뱀이 목을 졸라대는 악몽의 시간들
그때 기꺼이 대부가 되어준 스테파노를 만났다
영세식 날 받은 초 한 자루가 다할 때 나의 삶도 끝나는 거라고
사물 하나에도 그리 생명을 불어넣으며 기도를 해보라고
스테파노는 엄지와 검지에 침을 묻혀 심지를 껐다
입으로 불어 끄지 않고 굳이 심지에 체액을 묻혔다.
영세를 받고 냉담자로 지낸 몇 해
기도도 미사도 습관이고 중독만 같아서,
차라리 죄를 짓고 괴로워하는 일이 더 나다운 것만 같아서
처음 길이로부터 큰 차이 없이 장수를 하고 있는 초
한 뼘 가웃한 그 길이대로라면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는데
어쩌다 용기를 낸 날이면
식은땀을 흘리며 겁먹은 내 낯짝이 보인다
기껏 한 자루 초에 지나지 않는 것이,
겨우 제 품이나 밝히는 가난한 빛의 평수가
심지에 묻은 스테파노의 말 앞으로 나를 데려간다
전화를 드리면 들려오던 아베마리아
꺼질듯이 타오르는 저 심장 박동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멀어져버린 것인지, 혀가 뚝뚝 불땀을 흘린다.
창밖으로 밀어낸 어둠을 바짝 당겨 살아나는 초
-전문-
※ 제목 끝에 [▼] 표시가 된 작품은 시인들이 직접 뽑은 1-2년 내의 근작 대표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시작품상 후보작으로 검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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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1-6월(제378)호 <신작특집>에서
* 손택수/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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