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이 된 먹감나무 뒷이야기
윤정구
자하紫霞 선생에게 함께 시 짓고 사군자 치는 시회詩會가 있어 매화꽃 피는 아침 송설헌松雪軒 사랑채 연꽃 피는 소리 듣는 새벽 궁남지窮南池 기러기 보름밤 국화꽃 핀 말바우 첫눈 내리는 날 오시午時 망원정望遠亭에서 아홉 친구가 뭉쳤것다
모인 지 십 년쯤 되는 날 자하 선생이 오래 보아둔 먹감나무를 구해 창의문彰義門 옆 솜씨 좋은 소목장小木匠에게 주며 아홉 개의 문갑을 부탁했것다 소목장이 먹감나무를 뒤집어가며 셈하여보더니 잘하면 여덟 개는 나오겠습니다요
사람이 아홉인데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서운하지 않것소 자하 선생 퍼뜩 생각 끝에 이르기를 한두 놈은 앞쪽은 먹감나무로 하고 위아래 옆구리는 내가 가진 느티나무로 섞어 짜 만들면 어떻것소 그놈을 내가 쓰면 되것네
그리하여 나온 놈이 오늘 국립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괴먹문갑이라 한다 먹감나무 문갑은 흔해도 괴목과 먹감나무를 섞어 짠 문갑은 귀하고 특별한 느낌인지라 도리어 보물로 지정되는데 무리가 없었다는 뒷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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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學 史學 哲學』 2021-여름(제65)호 <여름 특집 8인 시선>에서
* 윤정구/ 경기 평택 출생,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한 뼘이라는 적멸』외 5권, 산문집 『한국 현대 시인을 찾아서』, <시천지> <현대향가시회>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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