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끗발/ 서하

검지 정숙자 2010. 10. 19. 01:43

  

    끗발

      -9



   시골마을까지 적셔버린 바다 이야기,

   그 원조는 아버지가 아닐까

   신혼 때 아버지는 9 때문에 신이 났고

   어머니는 9 때문에 혼이 났다

   신접살림 나면서 받은 전답

   바다에 빠뜨리고도 모자라

   딸자식 불국사 수학여행 보내려고

   숨겨둔 깨 한 말까지 바다에 바쳤다

   미쳤다며 어머니 길길이 날뛰었지만

   아버지 주머니엔 9만 소복했다

   모든 길은 가보*로 통했고

   화투패처럼 내던진 첫딸이 7월 29일에 태어나자

   끗발 튄다며 바로 화투판으로 달려갔다는데

   낱장 같은 동생들 호적에 오른 생일에는

   9라는 숫자가 가보(家寶)처럼 숨어 있다

   햇 살 한 장 들지 않는 다락방에서

   아버지 손 씻게 해달라고

   용왕님께 편지를 쓰기도 했다

   싱싱한 끗발은 끝이 없었고

   아무것도 건져 올리지 못했지만

  아직도 아버지,

  몇 년째 구들장 같은 일흔둘이다


 *가보: 노름판에서 아홉 끗을 일컬음




  *시집『아주 작은 아침』에서/ 2010.9.5 <시안>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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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하/ 경북 영천 출생, 1999년『시안』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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