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숲, 바람의 무도/ 고석종

검지 정숙자 2010. 10. 18. 00:04

  

    숲, 바람의 무도


      고석종



  누구든 어둠을 건너려면 눈을 감아야 한다

  저 숲속, 웅크린 적멸도

  그렇게 유희의 징검다리를 건너갔을 게다

  면식범일까

  덫에 걸린 털목도리를 걷어내자

  어금니를 앙다문 적멸의 유희가 벌긋거렸다

  떴다방인가

  저주파가 환시처럼 떠다니던 날, 누군가

  할켜대던 허공 벽

  패인 빗살무늬가 목울대를 휘감아 조여도

  바람만 왁자한 숲은 묵비권이다

  빗장을 풀지 못한 채

  검시를 끝내고 구부러진 나무처럼 굳어버린

  무릎 뼈를 펼 때

  우두둑, 어디론가 마지막 신호음을 타전했다

  고삐에서 떨어져 떨고 있는

  잠긴 휴대폰, 비밀번호도 찾아야 한다

  완행열차가 될 것 같다며

  두런거린 현장이 따갑게 꽂혀 왔다

  울혈을 잉태한 새벽

  바람의 척추를 쪼아 먹는 그들의 가슴에도

  시반처럼

  검붉은 피멍이 뭉쳐있을 것이다

  윙윙 비밀번호 같은 바람의 무도

  숲속을 훑고 떠난 궤적, 저 적멸의 유희

 


  *시집『말단 형사와 낡은 폐선』에서/ 2010.8.30<한국문연>펴냄

  -----------------------------------------------------

  *고석종/ 전남 완도 고금 출생, 2003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뚜라미/ 서하  (0) 2010.10.19
끗발/ 서하  (0) 2010.10.19
냄비 속의 달/ 고석종  (0) 2010.10.18
참깨밭을 지나며/ 배교윤  (0) 2010.10.17
앉은뱅이의 춤/ 배교윤  (0) 2010.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