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냄비 속의 달/ 고석종

검지 정숙자 2010. 10. 18. 00:03

  

   냄비 속의 달


     고석종



  세상은, 찌그러진, 냄비라네

  잃어버린 고대도시

  이끼 낀 벽을 뚫고 나온 미끈한 여자가 지중해의 물침대에 누워 있네

  

  하늘엔 끓는 물

  달그림자 속에서 숨 막아 오는 열기를 차단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흠뻑 젖었네

  물속의 불기둥이 출렁거릴 때마다 그녀가 연기처럼 타오르며 노래를 부르네


  마리화나, 마리화나…


  땅엔 얼어붙은 강

  부푼 달무리 젖가슴에 매달려 한쪽 팔을 늘려 허공으로 쪽방을 들어 올렸네

  풋풋한 새벽녘을 때리는 연기, 하얀 건물들의 불빛이 흐느적일 때마다

  나는 히죽히죽 노래를 부르네


  마리화나, 마리화나…


  1회 사용량은 공짜, 달을 클릭하세요,

  찌그러진 냄비 속에 떠오른 달, 가물가물 눈이 감기네

 


  *시집『말단 형사와 낡은 폐선』에서/ 2010.8.30<한국문연>펴냄

  -----------------------------------------------------

  *고석종/ 전남 완도 고금 출생, 2003년『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끗발/ 서하  (0) 2010.10.19
숲, 바람의 무도/ 고석종  (0) 2010.10.18
참깨밭을 지나며/ 배교윤  (0) 2010.10.17
앉은뱅이의 춤/ 배교윤  (0) 2010.10.17
해피 버스데이/ 오탁번   (0) 2010.10.16